“장기표 형·한기호 선생·그리고 나의 숙모님”···여류 이병철 시인의 ‘이별의 여정’

장기표 조무하 부부의 마지막 여행 <사진 이병철>

오래 전에 나는 ‘바람 새’라는 시에서 “바람 빛 맑은 십일월은 돌아가기 좋은 달이라고, 저 바람처럼 내 혼(魂)도 그리 맑으면 가볍게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썼던 적이 있다. 십일월, 동짓달은 떠나기에도, 떠나 보내기에도, 떠난 이들을 추모하기도 좋은 달일지도 모른다.

그제 금요일엔 노겸 김지하 시인이 생전에 악어형이라 부르며 따랐던 고 한기호 선생을 추모하는 자리가 있었다. 가까운 이들과도 제대로 작별의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홀연히 떠나시는 바람에 너무 늦지 않게 추모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고인은 이번 생에서 나하고도 특별한 인연이었다. 아내 정원을 당신의 딸이라 여겼기에 나도 사위가 된 것이다. 제대로 사위 노릇은 하지 못했지만 고인은 내게 몇 가지의 일과 함께 당신의 마지막 길과 관련한 당부도 하셨다. 내가 호상을 맡고 한 점의 뼛가루를 지리산에 뿌린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추모의 자리엔 고인의 친구들과 후배 등 가까운 지인 몇 분과 가족들이 함께하여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짧은 동영상은 한 편의 시와 같았다.
추모 음악으로 아쟁 연주를 함께 듣고 마지막으로 고인이 좋아했던 ‘인연’이란 노래를 함께 부르며 추모의 자리를 마무리했다. 언론인으로 한생을 사셨지만, 우리 시대의 지성인이자 신사였으며, 로맨티스트였다는 고인 친구분의 회고처럼 그렇게 사시다가 떠나신 분이셨다.

당신의 장례식에 다녀갈 이들을 위해 감사의 말씀과 답례품까지 준비하셨던 분의 한 생을 기리기에 11월의 저녁은 적절한 시간이였다.

장기표 선생 49재

11월 9일은 우상(牛墒) 장기표 선생의 49재 막재가 봉은사 법왕루에서 있었다.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장기표 선생은 돌아가신 뒤에야 세상에서 선생의 진모를 제대로 알아보게 되는 것 같다는 어느 언론인의 말처럼 허접쓰레기들이 판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오늘의 정치판에서 선생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의 49재는 고인을 추모하는 여러 사찰에서 자청하여 돌아가며 진행했는데, 큰 절인 봉은사답게 49재 마지막 의식도 규모있게 치뤄지는 것 같았다. 내게는 그런 의식 가운데 회심곡과 만가(輓歌), 영혼을 위로하는 살풀이 춤이 가슴 깊게 다가왔다.

우상 장기표 선생, 그는 이번 생에서 속 깊은 이야기까지 허물없이 함께 나눌 수 있었던 몇 명 안되는 동지이자 존경하는 선배였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인연이 더 있을까. 이 시대의 마지막 지사이자 영원한 민주투사이며 정치운동가이기도 했던 우상 형은 49재의 의식에 따르면 이번 생에서 남아있던 마지막 미망을 깨치고 이제는 더 밝은 세상에서 새롭게 태어났으리라 싶다.

49재의 자리에서 몇 분들의 지인들과 우리의 남은 날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잿빛의 도시, 서울의 한복판에도 가을이 깊어 가는가. 봉은사 경내의 모과나무에도 노랗게 모과가 익어가고 나무의 단풍 빛도 산골처럼 붉다.

10일은 강원도 홍천의 작은 어머니(숙모님) 장례식에 참여했다. 어제 서울에 올라와 있는데, 숙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았다. 얼마 전 강원도 여행 때 찾아뵈었을 때는 표정이 밝고 기력도 많이 회복된 것 같아 좀 더 오래 머물 것이라 여겼는데, 갑작스레 돌아가신 것이다. 숙모님은 생전에 인자하셨던 그 모습처럼 영정사진 속에서도 고요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만났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태어났으니 돌아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다. 언제,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우리는 모두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길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잘 돌아가는 것이리라. 생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그것일 터이다. 20세기 현자의 한 사람이라고 했던 구르지에프가 우리가 깨어나야 하고,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잘 죽기 위해서라고 설파했던 말이 이 십일월에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한 추모와 작별의 의식은 언젠가 떠나게 될 나를 위한 의식이기도 한 것임을 생각한다. 이번 생의 내 고맙고 소중했던 인연들이 가을바람에 낙엽지듯 그렇게 떠나고 있다. 언젠가 나도 그 인연들 따라 그리 떠날 것이다. 그렇게 내가 떠날 달은 바람 빛이 맑고 곱게 물든 단풍들이 미련없이 잎새를 떨구는 이 11월이면 좋겠다. 그처럼 밝고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마음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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