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히키코모리식 성경 읽기
마태복음 12장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마 12:3)
예수님은 의아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성경을 읽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심정으로 반문하신 것입니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 12:5)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읽은 것이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분명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식대로 읽은 것입니다. 자기 식대로 읽다가 자기 안에 갇혀버리고 만 것입니다.
간혹 성경을 ‘100독 했다’, ‘1,000독 했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분들을 보면 조심스럽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성경을 몇 번 읽었는지가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아서 내가 몇 번 읽었는지를 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다윗의 인구 조사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자기 생각을 확인하며 성경을 읽게 되면 자기 입맛에 맞는 구절들, 위로가 되는 구절들만 긍정합니다. 동의되는 부분만 받아들이고, 동의되지 않으면 거릅니다. 그러는 동안 인애와 자비와 긍휼, 유연함은 점점 사라지고 자기 자아만 더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자기 중심성으로 똘똘 뭉칩니다. 제일 큰 문제는 그렇게 갖게 된 자기 관점을 성경적이라고 여기는 점입니다. 이렇게 바리새인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야말로 자기 안에 갇혀버린 히키코모리 아닌가요?
성경 읽기는 자기 중심성을 넘어가는 경험입니다. 의문과 질문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 자아가 해체되었다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재조립되는 경험입니다. 자아에 매몰되었던 나를 나로부터 구출해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하는 기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내 생각과 의견을 내려놓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가 보겠다는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난 다음은 더 중요합니다. 읽은 말씀을 적용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야말로 말씀의 생명력을 경험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