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무엇을 가졌는가’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


소유와 자유는 ‘무엇을 가졌는가’ 그리고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의 문제

마태복음 19장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

어쩌면 이 청년에게 영생이란 자신이 그동안 모아온 재산처럼 획득할 수 있는 모종의 소유물같이 여겨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그가 세상을 살아온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20)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그는 그것을 얻어왔던 것 같습니다. 부자이기도 하고 관리이기도 했던 이 청년은 물질을 소유하는 데도 성공했고, 명예를 소유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영생도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그동안 노력을 기울여왔던 방식으로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와서 질문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이 청년은 소유에 관심이 있었지만 주님은 자유를 말씀하십니다. 부자 청년의 질문은 ’무엇을 더 소유하면 내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유가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유가 여유를 제공할지는 모르지만 자유는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소유는 ‘무엇을 가졌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자유는 ‘무엇을 버릴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영생의 길은 더 많이 소유하게 되는 길이라기보다 더 많이 자유하게 되는 길입니다.

부를 소유하듯 영생이나 구원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소유물로 인식하면 내가 소유함으로 누군가는 누릴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사상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천국을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여겼습니다. 종교인 특유의 오만함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없는 것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 소유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태도에서 말입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2)

자신이 생각하던 방식으로 영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차피 버리게 될 것을 진작에 버리지 못해서 결국 붙잡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된 셈입니다.

현대 사회는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과연 ‘경제’와 ‘자유’라는 개념이 조화롭게 결합될 수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소유와 자유> 리처드 파이프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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