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고考…”내년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벌초를 했다.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벌초를 시작한 건 일곱 살 무렵이다.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형님 손잡고 산소에 갔다. 아직 여름이 남아 있어서인지 동쪽 하늘은 불그스레한 빛으로 물들었다. 그 아침의 찬란했던 노을을 지금도 기억한다. 처서가 지난 들녘에선 온갖 가을 들꽃이 여기저기 고개 내밀고, 풀잎 내음과 곤충들의 선선한 노랫소리가 귓전에 다가왔다. 내 몫은 산 담 위의 풀들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 백년이 훨씬 지났다.
아이들은 벌초를 하면서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은 묘지 하나를 차지하고 가족과 이별한다. 개인묘지 면적은 법으로 30제곱미터, 9평 남짓한 크기이다. 조상들의 묘지 앞에서 나의 묘지를 생각했다. 내 묘지가 필요할까, 맨몸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온 것도 감사한데 비록 한평일지언정 이 아름다운 초록빛 지구에 내 흔적을 남겨야 하는 걸까. 조카에게 “내 죽으면 화장해서 내 어릴 적 세상을 향해 꿈꾸던 고향 앞바다에 뿌리면 어떨까?” 물었더니 “그건 바다를 오염시키는 범죄”라고 비아냥댄다.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아직 살 날이 남아있다는 자신감에서다. 인류역사에서 첫 묘지는 고인돌이라고 한다. 학자들의 의견이다. 고인돌 당시의 묘지는 송장을 숨기기 위함이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매우 공감한다. 나중에 피라미드나 왕릉이 생겨나면서 기억, 기념, 추모의 장소로 변했고 일반 집안에서도 형편에 따라 여러 형태의 묘지로 발전돼 왔다.
여기에는 “조상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 후손들이 발복한다”는 믿음도 뒤엉키는데 나는 그 말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고인돌 당시의 묘지, 자연에 왔던 사람을 자연으로 돌려 보내는 일로 그 기능은 멈췄으면 좋겠다. 내년 벌초를 하면서 나는 똑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