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나의 돌봄, 하나님의 돌봄
사도행전 7장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행 7:23)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 중요해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토록 중요한 것이 나중에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보는 눈이 달라지고, 생각의 깊이와 폭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나이 40이 되어서 자기 동족의 삶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제 노역에 신음하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는데, 모세의 눈에는 그 모습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철이 든 것일까요?
모세가 부르심을 받은 나이가 80세라고 일반적으로는 이야기하지만, 40이 되었을 때 모세의 내면에 일어났던 심경의 변화 또한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어느날 문득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났다는 것, 그저 우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그의 영혼이 처음으로 반응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모세가 모세다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일까요? 인생의 목적에 눈을 뜨고, 내 존재의 의미를 좇아 사는 것 아닐까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로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보다 자기 동족을 돌보는 일이 훨씬 가치있다는 것에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눈을 떴을 뿐입니다. 40세에 눈 떴지만 문제 해결의 방법 또한 40세다웠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의 편을 들어,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여서, 압박받는 사람의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행 7:24, 새번역)
민족의 원수를 갚겠다는 의분에 돌을 던졌지만, 원수를 갚기는커녕 계란으로 바위를 내리친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 전역을 초토화시킬 때가 되어서야, 그는 깨닫지 않았을까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