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길 가다가 만난 예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도행전 9장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행 9:3)

사울은 예수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분명히 예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 길에서 예수를 만났던 것일까요? 예수가 사울을 향해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4-5)

사울은 이 말 한 마디를 듣고 인생을 예수님께 걸게 됩니다. 너무 신중하지 못한 처사가 아닌가요? 어떻게 번쩍이는 빛 한 번에, 말 한 마디에 인생을 걸 수 있습니까?

주변에 어느 날 덜컥 크리스천이 된 분들이 계십니다. 오랜 시간 연구 끝에 신 존재를 증명한 것도 아니고, 철학적 탐구 끝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인생길을 가던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증거를 대보라고 하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자기 인생 말고는 별다른 증거가 없습니다.

신앙이란 무한자와 영원자에 대한 경건한 직관입니다. 특이점에서 발생하는 시공간의 역전 현상처럼,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사건입니다. 사울은 다메섹을 향해 가는 길에서 사건의 지평선을 지났던 것입니다.

전도체의 온도를 극한으로 낮추다 보면 특정 온도에서 전도체가 갑자기 초전도체가 됩니다. 수학에서는 함수값과 극한값이 일치하지 않는 불연속점이 존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크로노스의 어느 불연속점에서 카이로스의 차원이 섬광처럼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지점에서 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어느 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에 관한 신학적, 학문적 파악도 아니고 행동의 당위를 주장하는 윤리나 도덕, 율법도 아닙니다. 그것들이 신앙 안에 흘러들어와 있지만 그것은 껍데기이지 본질은 아닙니다. 또한 신앙은 그것들의 합성물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멸시하는 이유는 신앙 안에 흘러들어와서 기형적 형태로 굳어진 교리와 교조, 전통, 도덕 등을 신앙의 본질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유한자를 향해 밀고 들어오는 무한자의 계시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수동성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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