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아시아엔’ 창간 12돌 ‘라오스 야구 전파’ 특강을 마치고

특강 중인 이만수 감독 <사진 정경렬 전 조선일보 기자, 영산대 교수>.

어제(10일)는 외신기자클럽에서 <아시아엔> 창간 12돌 기념 ‘사은의 밤’ 모임에서 강연했다. 2011년 아시아엔을 창간한 이상기 아시아기자협회 창립회장은 ‘헐크 이만수 감독의 동남아시아 야구 전파 10년 성과와 보람’을 주제로 강연해달라고 부탁했다. 강연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강연을 통해 새롭게 공부하게 되고, 다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번 외신기자를 포함한 모임 참석자에게 강연을 하면서 53년간의 나의 야구인생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평생 한길로 달려온 내가 제3국에 들어가 야구를 전파한다는 것은 선수 시절이나 지도자 생활을 할 때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SK와이번스 감독생활을 끝으로 홀로 라오스로 건너가 야구를 전파하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른다.

이만수 감독과 이날 축사를 위해 이틀 전 몽골에서 날아온 덴데브 테르비시 전 몽골 총리 <사진 정경렬 전 조선일보 기자, 영산대 교수>

처음 라오스에 들어가 야구를 전파할 때만 해도 솔직히 이 나라에 야구가 보급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야구라는 단어조차 없는 나라, 동남아 최빈국, 야구 인프라가 하나도 없는 나라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회고해 보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가 꽃필 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나 혼자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후원이 거름이 되어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전까지 나는 오로지 야구로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그렇게 평생 한길로 달려온 내가 그동안 나를 응원해 준 팬들에게 보답할 길을 찾은 것이 재능기부와 동남아 야구전파다.

모두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고 계획을 세우냐”고 말렸다. 그래도 나는 한번 도전하고 싶었다. 모두가 할 수 없다면 나라도 한번 도전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인생철학인 “Never ever give up” 정신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이만수 감독이 강연 중 청중들에게 퀴즈를 내고 있다. <사진 정경렬 전 조선일보 기자, 영산대 교수>

왜 나라고 해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낯선 라오스에서 야구를 보급할 때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억울한 누명을 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인생철학인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나를 다스리며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야구의 ‘야’ 자도 모르던 청소년들이 10년이 흐른 지금,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라오스 사상 처음으로 첫승을 거두었다. 또 라오스 구기종목에서 처음으로 본선에 올라가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었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을 때 무모할 정도로 시작했던 일들이 지금은 인도차이나반도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야구가 발전하며 이웃나라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야구 10년차 라오스는 현지 야구대표를 중심으로 자립의 단계이기 때문에 나는 후원자에서 응원자로 물러난다.

몇년 전 부탄과 인도네시아에서 야구를 전파해 줄 수 있는지 문의가 왔지만 그 당시는 라오스에 집중하느라 여력이 없어서 훗날을 기약했는데 이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다.

라오스가 당당하게 아시안게임에서 첫승을 올렸고 또 베트남에도 야구협회가 설립되고 국가대표가 만들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다. 나는 오는 22일 3번째 야구전파 국가인 캄보디아로 가 야구 재능기부를 하려고 한다. 라오스나 베트남과는 달리 야구협회도 있고, 선수들도 있다고 한다.그래도 야구 환경이 열악하니 가서 야구도 가르치고 도와줄 점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불가능은 도전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힘들고 어렵더라도 한번 시도하고, 도전하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됐다.

송민 이주형 서예가가 이만수 감독에게 전달한 작품. 송민 작가는 ‘만수야구萬樹野球 세계에 2만그루의 나무를 심다’를 써 이만수 감독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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