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유라시아대륙 횡단 귀국길 김현국씨 “러시아인 따스함 못 잊을 것”
“그냥 글 쓰고 책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현재 바르샤바와 베를린 사이를 연결해주는 E30번 도로 상에 있습니다. 여기 고속도로 휴게소는 런던에 본사를 둔 셸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휴게소 공간의 파트너로 있는 버거킹은 미국 기업입니다.”(김현국 탐험가가 필자에게 지난 8월 29일 보내온 카카오톡 메시지)
꼭 2달 전인 당시 그는 “반복적으로 만들어온 시베리아를 지나는 유라시아 대륙횡단 도로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시베리아를 지나는 간선도로 위에 12개의 복합공간을 구상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러시아, 뉴욕, 유럽으로 뛰어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이렇게도 썼다. “앉아서 머리만 쓰는 삶은 아니다. 무모한 탐험가라는 이미지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바보처럼 살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디지털 기반의 세계화 시대는 누구나 지구 전체를 캔버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군 제대 후 1990년부터 국경이라는 경계 밖으로 나가 30년 이상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대륙 현장에서 관찰하고 분석해 온 그는 지난 5월 중순 한국을 떠나, 11월 중순 귀국 예정이다.
탐험가 김현국은 올해 55세, ㈔세계탐험문화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지난 5월 10일 ‘길은 평화다’ 구호를 내걸고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출정식을 한 후 캐스퍼를 타고 대장정에 나섰다. 그는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AH6) 기점인 부산을 거쳐 동해시에서 배편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후 러시아 횡단도로, 유럽도로(E30)를 따라 하바롭스크~노보시비르스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독일 베를린을 지나 최종 목적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9월 6일 도착했다.
1996년, 2010년, 2014년, 2017년, 2019년 모터바이크를 타고 단독으로 유라시아 대륙 횡단에 성공했다. 여섯번째 유라시아 대륙 횡단 귀국길에 있다. 그는 이후 로테르담~베를린~폴란드 바르샤바, 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을 거쳐 다시 러시아 시베리아를 지나고 있다. 출발 당시 봄꽃이 만개했으나 이미 추위와 함께 눈길이 그의 앞에 놓여있다.
김현국 탐험가와 필자는 그의 대장정 이후 여러 차례 SNS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는 러시아와 독일 등에서 여러 현지 유력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대장정의 의미와 목표 등을 전했다.
<아시아엔>은 그의 언론 인터뷰 몇 대목을 독자들께 소개한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방송과의 인터뷰를 <사유즈노예 베체>(Союзное вече)에서도 기사화했다. <사유즈노예 베체>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전역에 배포되는 연합신문이다.
먼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방송 기자의 김현국 탐험가 소개다. “한국은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에게 이국적이다. 33년 전에서야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한편, 여행자 김현국과 같은 놀라운 사람들이 있다. 그는 이미 유라시아 대륙을 다섯 번 횡단했다. 그는 1996년에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고 모터바이크로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모스크바에 있다.”
-김현국 탐험가께선 어떻게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나?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체호프의 열렬한 팬이다. 지식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즉시 이 위대한 작가를 떠올린다. 체호프로 한국에 잘 알려진 안톤 파블로비치는 1890년 시베리아를 횡단했다. 나는 그의 길을 반복하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 역사와 관련이 있다. 1987년 대학에 입학했다. 스무살 때였다. 그 얼마 후 한국에선 민주화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 우리는 민주화 다음 단계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 되기를 바랬다.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통일을 유라시아 대륙과의 만남으로 인식했다. 유라시아 대부분은 러시아 영토가 되어 있다. 소련, 내가 항상 그곳에 가고 싶었던 이유다.”
-무섭지 않았나? 해외에서는 우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다. 우리는 사모바르(samovars,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는 도구로 뜨거운 물이 나온다) 등으로 보드카를 마신다.
“맞다. 보드카도 마피아도 무섭다.(웃음) 러시아가 한반도와 국경을 접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다. 나는 서구와 함께 자본주의의 길을 따라가는 나라에서 자랐고, 당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이념이 대립했다. 우리들은 어려서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뿔이 있다고 듣곤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사회주의 주요국가인 소련에는 뿔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악마적 혹은 비유적인 의미인가?
“직접적인 표현이다. 뿔 달린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고, 그게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미지의 영역에 들어가고 싶었다.”
-당신의 대륙횡단 여행 목적은 무엇인가?
“우선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km에 불과하다는 사실부터 살펴보겠다. 즉, 5천만명의 한국인이 매우 비좁은 땅에 살고 있다. 1만km를 여행하는 동안 내 시야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1996년부터 29년 동안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유라시아 대륙횡단 고속도로에서 자료를 수집해 왔다. 이번으로 여섯번째 여행이다. 무엇을 위해서냐고? 난 스파이가 아니니 걱정 마시라. 언젠가는 한반도가 통일되어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 필요해질 때를 상상해 보라. 그 여행객 중 90%가 러시아 영토를 통과할 것이 분명하다.”
김현국 탐험가는 유라시아대륙 횡단 도중 만난 러시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전하는 나에게 주어진 보상은 훌륭한 러시아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 역시 부유층 출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나를 매우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나를 대접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했다. 모터바이크가 고장 나자 고쳐줬다. 나는 러시아 어디서나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만났다.”
“러시아에는 정교회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 가톨릭교인, 불교도도 서로 조화롭게 살고 있다”는 프라우다방송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잘 안다. 나는 단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곳에서 기분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유럽 사람들에게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러시아에 대해 나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더라. 그보다는 러시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나는 러시아인의 개방성에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유럽인들은 러시아가 매우 폐쇄된 나라라고 믿고 있으며 러시아 사람들도 폐쇄적이라고 알고 있다.”
김현국 탐험가는 “나는 내가 본대로 러시아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러시아 홍보대사와 다름없다”고 했다.
김현국 탐험가는 지난 9월 독일의 <베를린차이퉁>(Berliner Zeitung)과도 인터뷰를 했다. 그는 “나는 베를린을 가장 좋아한다”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베를린은 분단와 재통일을 상징한다. 브란덴부르크문은 평화의 문이라 불린다. 나는 독일인들이 이 분쟁에 참여하지 말고, 중재자가 되어 분쟁을 끝내야 한다.”
이제 3주 남짓 후면 김현국 탐험가는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다. 그의 생애 통산 6번째 유라시아대륙 횡단에서 가져올 이야기 보따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