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국의 유라시아③] ‘독일 통일’ 상징 브란덴부르크 앞에 서다
9월 4일 독일 하노버를 지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 글을 쓴다.
1.
유럽 구간에서는 E30번 도로를 주요 이동로로 잡고 러시아 트럭운전사가 소개해준 최적의 길 안내 어플을 통해 지선도로를 상하로 오가며 자유롭게 움직여보고 있다.
E30도로는 아일랜드 코크와 러시아 옴스크를 출발점과 종점으로 삼는 유럽 고속도로다. E30 노선은 일반적으로 러시아 옴스크에서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국경까지의 구간을 AH6(아시안하이웨이 6호선)과 공유하고 있다.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휴게소는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셸이라는 기업이 주유소와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달려온 발트3국과 폴란드 고속도로와는 다르게 셸에서는 맥도널드나 버거킹 등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파트너로 삼지 않고 있다.
대신 독일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호텔이 독립된 건물로 서로 약간 떨어져 있다. 샤워장은 셸 주유소와 레스토랑 모두 갖추어져 있다. 그 밖에도 대형트럭 운전사들이 쉴 수 있는 전용 주차장과 관련 시설들이 함께 있다.
며칠 전부터는 차 안에서 자다가 일어나서 긴옷을 입고 다시 눕는다. 새벽 공기에서 가을이 살짝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9월 4일)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최종 목적지가 되는 로테르담의 뉴욕호텔까지 달려간다. 지하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 중에 상점 안의 자동차용품 코너로 시선이 쏠린다.
시베리아는 구간별로 9월 중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겨울 환경의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육로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본다.
2.
9월1일부터 2박 3일 동안 베를린에서 체류했다. 브란덴부르크 게이트가 한눈에 들어오는 파리저 광장 한편에 자리잡고 차박을 하면서 이른 아침이면 함께 시베리아를 달려온 캐스퍼와 이동해서 나의 꿈을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라시아 마실가기
이것은 시베리아를 횡단하거나 한반도로부터 확장된 공간으로서 유라시아 대륙을 경험하는 것이 더 이상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단지 스마트폰과 카드 한장 그리고 출퇴근하는데 사용되고 있는 일상의 이동수단이 필요할 뿐이다.
3.
브란덴부르크 게이트는 한때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고, 현재는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되는 곳이다. 게이트와 파리저광장 주변은 각국 대사관으로 둘러싸여 있고 광장에서는 허가받은 시위 등의 단체행동이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해 대사관을 지키는 경찰들이 광장의 상황을 항상 체크하고 있다.
파리저광장이나 브란덴부르크 게이트와 주변 지역은 일반인이 운전하는 차가 접근할 수 없다. 나는 광장과 게이트가 한눈에 들어오는 스타벅스 매장과 접해있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내 뒤로는 쓰레기통으로 사용되는 커다란 콘테이너 박스가 있고 그 뒤로는 공사중임을 알리는 시설물이 세워져 있다. 나는 벌금을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금, 토,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첫날에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바로 차를 몰고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차에 그려진 이동루트를 보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 둘씩 호감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경찰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내게 다가와 “이곳은 접근 금지구역”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줬다.
나는 바로 반응을 보였고 여러 번의 시도 뒤에 스타벅스 매장 앞 도로변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주차해서는 안되는 장소다.
그리고 밤이 되자 번역기를 돌려 문장을 만들고 광장을 지키는 경비에게 다가갔다. “나는 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이곳에 왔다. 남과 북이 분단된 유일한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이곳 브란덴부르크 게이트는 꿈의 장소이다. 사진 한장 찍게 해달라.”
독일 특히 베를린은 나에게 말이 통하는 장소다. 돌아온 답변은 자신은 경비이며, 이곳에 들어오면 경찰이 올 수 있고 결과적으로 벌금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고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걸어서 빠르게 이동해서 차를 몰고 광장 안으로 들어섰고 브란덴부르크 게이트로 접근해서 a에서 b로 이동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광장에는 한밤 중에도 사람들이 있어 차가 있는 곳으로 몰려온다.
둘째날
아침에 다시 차를 광장으로 이동시켰다.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즉석에서 말을 하게 되면 여러번 반복해서 멘트를 수정해나가야 한다.
1분짜리와 7분짜리 영상을 위해 열다섯 번 이상을 반복작업을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스타벅스 매장 밖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광장과 게이트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나는 또 노트에 글을 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동루트를 보고 차에 접근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삼일째 되는 날도 이른 아침부터 광장의 상황을 관찰했다. 그리고 대사관을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 번역기를 통해 만들어진 문장을 다시 보여주었다.
독일 경찰은 차에 새겨진 이동루트를 보고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차를 세워놓은 장소도 일반인이 차를 가지고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얼굴 표정은 부드러웠다.
나는 다시 다른 문장을 보여주었다. 내용은 이랬다. “벌금 감당할 수 있다. 브란덴부크 게이트는 나와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꿈의 장소이다. 이곳을 보기 위해 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해왔다. 자동차를 타고 광장을 한바퀴만 돌자. 그리고 사진 몇장만 찍자.“
그는 자신이 있는 동안은 괜찮다라고 내게 호감을 보였다. 그 시간에는 광장에 사람들이 없어 오후 1시까지 기다렸고 결국 광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느새 경찰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거울을 바라봤다. 낯선 외국 땅에서 홀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더욱 주저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해보자 하고 비상등을 켜고 서서히 광장을 향해 차를 움직였다.
차는 기어가는 속도로 움직이게 했지만, 반드시 광장을 한바퀴 돌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한손으로는 영상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광장을 한바퀴 돌고 광장의 한편에 차를 세웠다. 1분짜리 멘트 영상을 다시 만들어보기 위해서 차밖으로 나오자 몇몇 사람들이 차를 향해 몰려왔다.
카메라 촬영이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을 받아주지 않고 1분짜리 영상 작업을 마쳤다.
1분짜리 멘트로 정리하기 위해 노트에 적어보고 스무 번 이상을 반복해서 멘트 연습을 했다. 말하는 재능이 없어서 멘트를 마치고 나도 항상 미련이 남아 다시 한번 더 영상 작업을 시도했다.
사람들이 다가와 말을 거는데 미소로 지나치고 카메라 앞에거 멘트 작업을 했다.
30초가 넘어가면서 경찰이 등 뒤로부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10여초 남기고 영상은 멈추어졌다.
남녀 경찰과 몇마디 말을 주고 받는 사이 차 주위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호감을 표현했고 경찰도 부드럽게 대했다.
이렇게 나는 9월 3일 차를 몰고 브란덴부르크 게이트를 떠나 베를린 시내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