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관심’인 줄 알았던 ‘욕심’
누가복음 3장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눅 3:15)
세례 요한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분위기를 이대로 잘 몰아가기만 하면 인생 역전이 가능한 세례 요한입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심중에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다는 것을 은근히 흘리기만 해도 됩니다. 그리스도인 척 한두 번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절호의 기회에 세례 요한은 김을 뺍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눅 3:16)
돈 욕심에 버금가는 욕심은 사람 욕심입니다. 어쩌면 더 위험한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에 대한 과한 욕심은 세상 사람들도 경계하는 것이기에 그나마 분간하기 쉬운 편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사랑, 배려, 돌봄, 관심, 섬김과 같은 것으로 감쪽같이 위조가 가능합니다.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속습니다. 상대를 위한 돌봄과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하지 나조차도 욕심인 줄 모릅니다. 때문에 우리는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위험성에 모두 노출되어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끌고 갑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사람들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평생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향해 ‘나는 따르면 안되는 사람’이며, ‘따라야 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외치며 살았습니다.
교회 공동체 대부분의 문제는 예수님을 잘 따르게 해주겠다는 사람을 잘못 따라가다가 발생합니다. 교회는 예수님만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모두가 예수님만을 따를 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