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어떻게 쉬어야 제대로 쉬는 것일까?
마태복음 11장
직장 일이든,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든, 공부하는 일이든, 무슨 일이든 계속하다 보면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몸이 경고를 보내기도 하고, 건강상의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쉰다고 쉬어지느냐가 문제입니다. 상사가 쉬는 시간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쉼 자체를 줄 수는 없습니다. 병원이 수면제를 처방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잠을 처방할 수는 없습니다. 쉬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입니다. 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도 막상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어떻게 쉼을 누려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어영부영 하다가 쉬는 시간을 다 보낼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일하는 법은 배웠지만 쉬는 법을 배워본 적 없는 우리는 쉼의 대용품들을 소비하는 것을 쉼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한 직후 가장 처음 맞이한 새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천지창조의 순서에 따르면 인간은 쉼을 먼저 배우고 일을 배웠습니다. 즉, 인간이 처음 맛본 쉼은 하던 일을 멈추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멈춰야 할 일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장 처음 누렸던 쉼은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나와 너의 관계, 마지막으로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쉼의 본질은 일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관계가 틀어진 인간은 그 어떤 편안한 여건이 주어져도 결코 쉴 수 없습니다. 좋은 침대에서 자면 편안할까요? 비수가 꽂힌 가슴을 부여 잡고는 절대 편안하게 발을 뻗지 못합니다.
싸운 부부에게 궁궐같은 집과 명품 침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상에 다양한 쉴거리, 놀거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문제의 본질을 잠시 잊게 도와주는 임시방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약빨이 떨어질 즈음 다시 찾게 만드는 진통제와도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예수님은 하던 일을 멈추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워라밸을 보장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멍에를 같이 메고 내 짐을 같이 지자고 하십니다. 관계를 맺자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쉼이 거기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