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마태복음 23장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마 23:5)
누군가 나의 가치를 알아봐준다는 것, 내가 들인 노력과 남몰래 흘린 눈물, 고생의 몸부림을 남들이 알아준다는 것은 굉장히 힘이 나는 일입니다. 인정 받으면 일할 맛도 나고, 늘 죽을 맛이던 인생이 인정 받기 시작하면 살 맛 나는 인생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요즘은 타인의 인정이 수량화, 수치화되는 시대입니다. 좋아요, 조회수, 시청률, 팔로워수, 구독자수 등과 같은 숫자를 통해 내가 얼마나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수치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하며 삽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다를까요? 사람이 알아준다면 희생하는 것도, 손해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나를 알아달라는 교묘하고도 은밀한 아우성으로 교회는 잡음이 늘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자기 헌신을 몰라줘서 섭섭하다는 마음을 달래는 일에 교회가 들이는 에너지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보에 이름도 올려주고, 남들 보는 앞에서 은근히 세워주기도 합니다.
교회 생활을 좀 오래 하다 보면 남들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여러 기술을 터득하기도 합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서, 왼손 빼고는 다 알 수 있게 하는 상급 난이도의 기술을 시전하는 고수들이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기도제목 삼아 타인의 이목과 관심을 나에게 집중시키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기도하고 위로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사자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남들의 관심을 받는 일의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든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의 인정에는 강한 독성이 포함되어 있기에 중독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은 인정 중독으로부터 풀려나는 길입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딱 한 마디 들으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인정 받는 기쁨이 70억의 찬사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아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