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 촌철] 보신탕의 추억

추억의 보신탕 집

[아시아엔=최보식 <최보식의 언론> 편집인]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사망 사건 뒤로 거의 한달 간 거리시위가 있었다. 그러다가 경찰의 수배령에 시위지도부들이 잡히지 않기 위해 명동성당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성당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둘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검문검색했다. 지도부들은 체포는 안 됐지만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됐다.

지금은 훨씬 심했지만, 그때도 시위지도부들이 조선일보에 대해 좋은 감정이 없었다. 매일 아침 이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신문 기사들을 공개 성토했다. 그러면 동조자들에 의해 조롱과 비난이 뒤따랐다. 해당 언론사 기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틀째인가, 내가 “당신들은 지금 기자회견을 하느냐 인민재판을 하느냐. 요즘 세상에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라고 따졌다. 이들은 “봐줬더니, 조선일보는 앞으로 회견장에 입장을 불허한다”고 나왔다. 한창 때라 나도 지지 않고 “이런 인민재판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 내가 거부한다”라고 퇴장했다.

타사 기자들은 회의를 갖고는 내 입장을 지지했다. 이들은 “지도부가 이 사안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도 기자회견에 응하지 않겠다”고 전달했다. 그러자 지도부(전교조 소속)가 찾아와 내게 유감이라고 표시했다. 그 뒤 회견장에서 신문사 기사를 성토하는 일이 없어졌다.

싸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드는 것인지, 명동성당으로 도피해온 지도부가 어느 날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겨레신문에게나 해야 할 말을 내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명동성당 입구를 경찰이 지키고 있어 한 달 가까이 나가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식료품 등을 반입하는 것도 막혔다. 솔직히 여기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영양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그렇겠구나. 뭘 어떻게 해주면 좋겠나?”

“…보신탕이 먹고 싶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명동성당 앞 골목에 ‘성심옥’이라는 보신탕집이 있었다. 나는 후배기자에게 돈을 줘 보신탕 한 바케쓰를 사갖고 오라고 해서 전달해줬다. 그 뒤 “오랜만에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얼마 뒤 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때 보신탕 값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갔을까.

이처럼 내가 신문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보신탕을 많이 먹었다. 상대와 식사 약속을 잡을 때 “개, 혀?”라고 암호처럼 묻기도 했다. 당신은 개를 먹느냐는 간단 질문이다.

매 끼니를 상식(常食)하는 신문사 선배도 있었다. 얼굴에서는 늘 윤이 났고 눈에는 정기가 돌았다. 그는 “보신탕” 말만 들어도 벌써 침이 꿀꺽 넘어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름이 ‘김낭기’였는데, 우리끼리는 “낭구 선배”라고 호칭했다.

취재원들 자리나 신문사 회식에서 ‘보신탕집’으로 의견이 일치되면 상당히 괜찮은 날이었다. 유명 보신탕집은 소고기집이나 일식집보다 더 비싸고 귀했기 때문이다. 같은 세대이고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도 보신탕을 먹지 않았을까 싶다. 별세한 LG 구본무 회장도 여의도에 그분의 단골집이 있는 보신탕 매니어였다.

보신탕을 사내들만의 음식으로 여기겠지만, 그때는 회식 자리에 여기자들도 등심 안심 갈비를 따지듯이 개 부위에 대해 논하곤 했다. 그런 문화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싸리집, 감나무집, 버드나무집 등이 유명했는데, 묘하게도 유명한 집은 다들 ‘나무’ 이름을 상호로 내걸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을 것이다.

나는 20년 전쯤 보신탕을 안 먹게 됐다. 별 이유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됐다. 간혹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먹을 게 많아져서 굳이 개고기까지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라는 싱거운 답을 줬다.

하지만 과거의 내 식성을 기억하는 이들은 있다. 몇 년 전 승진한 후배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상호가 소고기집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보신탕집이었다. 후배들은 “최 선배가 보신탕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잡았다”고 했다. 못 먹는 게 아니고 안 먹었던 거니까, 그날 맛있게 먹었다.

이런 보신탕이 강제로 못 먹게 될 것 같다. 개 식용이 법으로 금지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9월 13일 페이스북에 “우리 당이 ‘개 식용 금지법’ 추진을 안 한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다. 국민의힘은 그런 방침을 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신탕집은 이미 거의 사라졌고 가만히 둬도 다 사라질 판인데 이를 굳이 법까지 만들어 금지시킬 필요가 있을까. 먹는 취향의 문제인데 말이다. 더욱이 법률에다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붙여 ‘김건희법’이라며 떠들어대는 건 아첨의 끝판왕이다.

물론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에 앞장 선 측면이 있다. 지난 4월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의 비공개 오찬에서 “정부 임기 내에 개 식용을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게 제 본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지 이틀 만에 태영호 의원은 개 식용 금지를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헌승 의원은 지난달, 안병길 의원은 이달 7일 각각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을 제안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이 법을 ‘김건희법’이라고 명명한 뒤 아예 당론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검토했다. 이렇게 하는 게 가뜩이나 ‘비호감’ 김 여사를 더 코너에 몬다는 사실은 모른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을 무슨 신적 존재로 떠받들며 천재적 아부를 하던 자들이 이제는 대통령 부인에게까지 천재적 아부를 한다”며 “명색이 헌법기관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한심한 작태를 보이니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전체주의’로 퇴보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뭔가 좀 거시기하다.

2 comments

  1. 죽은 개사체 옆에 부어지는 음식폐기물… 잔인한 도살로 눈을 뜬 채, 코에서는 피가 흐르며 굳은 몸….어린강아지들이 구더기넘치는 음식물쓰레기를 밥으로 먹고 있다. 음식물쓰레기는 구더기와 곰팡이가 가득 차 있어 강아지들도 먹지 못하는 상태…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찌꺼기 위에 파리들… 뜬장 밑 똥은 산처럼 굳어져 벌레가 기어다닌다… 과연 이런 곳에서 정신적 육체적 학대받은 개고기는 보신인가? 영양식인가? 보양식인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개고기가 보신탕으로 둔갑하여 대국민을 조롱하고 기만하고 있다. 그대는 불법탈세와 동물학대범죄 옹호자인가?

  2. 개고기가 과연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인가. 우리 민족의 원류는 청동기 기마인들이다. 고구려 무용총의 ‘사냥도’와 터키 샤탈 휘이크의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의리가 유난히 강한 기마인들은 사냥과 경비를 돕는 개들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같은 기마민족인 몽골인들과 일본인들도 먹지 않는다.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들, 특히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개는 사람과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고 사람의 정서를 파악하여 그에 동조하려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개들이 지닌 언어능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단순히 단어 하나에 대한 음파의 기억이 아닌, 문장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감정을 표현한다. 언어에 대한 기계적인 반응이 아니라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훈련을 시킨 개나 그렇지 않은 개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개를 오래 길러본 사람들은 잘 안다.

    개와 첫 정서적 교감을 경험했을 때 그 놀라움은 굉장한 것이다. 그 경험은 개에 대한 상식이나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게 되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개를 바라보게 만든다. 개를 길러본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개고기 먹는 것을 만류하는 이유가 바로 그러한 경험 때문이며, 다른 동물과 다르게 개를 먹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이유도 다른 동물에게서 느낄 수 없는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굉장한 경험을 개를 통해 얻었기 때문이다.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먹기도 하지만 기르기도 한다”라고. 그렇다면 그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란, 감정이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타인과 감정을 교류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다른 정의로는 양심이 없는 사람, 죄의식이 없는 사람, 이상 성격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정장입은 뱀, 악의 종자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개를 기르면서 개와 정서적 교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개는 사람보다 감정표현이 더 풍부하기 때문에 웬만큼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개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플 때나 슬플 때 눈물을 흘리고, 온몸을 흔들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고, 때론 오줌까지 지리며 사람을 반기는 그들에게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그는 분명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 기쁨과 같은 감정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개를 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개를 먹는 행동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도 아니다. 개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듣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 중 대다수가 개에 관한 이야기이고, 방송매체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개와 인간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접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정상 성격자라면, 간접 경험으로도 개와 인간의 교감에 대해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 없이 개다리를 뜯어먹는 사람, 성욕을 채우기 위해 개의 성기를 뜯어먹는 사람, 입맛을 위해 개혀를 뜯어먹는 사람, 그들이 뜯어먹는 개들의 살점은 사람에게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흔들던 온몸의 일부였다는 것을 그들, 사이코패스들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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