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과 자유민주주의’ 세미나…윤석열 정부 비판도
좌장 송상현·김형오·김황식·이경숙···
발제 박지향·서희경·박찬욱 ·윤평중
“윤 정부 비민주적 자유주의의 모습”
인생기록을 세웠다. 세미나에 귀를 쫑긋 세우고 메모했다. 4시간 넘게 공부하듯, 귀를 기울였다. 촌철의 멘트들을 메모하고 되새겼다. 좌장은 1부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소장, 2부 김형오 전 국회의장, 3부 김황식 전 국무총리, 종합토론 이경숙 전 숙대총장.
발제자들 면면도 간단치 않고, 발제문도 논문 쓰듯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꼼짝없이 4시간을 붙들려 앉아 있었다. 고하 송진우 선생 손자 송상현 소장이 이사장인 ‘더플랫폼포럼’(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전 한양대 법대교수회장) 세미나는 특출 났다.
한신대에서 퇴직한 윤평중 교수는 예리했다. 마지막 발제자는 “불리하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석이 많고, 시간 압박이 심해서라고 말이다. 철학자의 발제는 역시 현란하고 휘황했다.
말미에 나온 윤석열 정부 비판은 통렬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이유에선지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상적이지만, 윤 대통령이 아프게 새길 만하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각각 수정된 자유주의와 수정된 민주주의의 역사적 접합물로서, 그 안에 각기 내장된 본원적인 갈등을 체제 내적으로 감소시키고, 좀더 발전적인 미래지향적인, 진화된 자유민주주의로 이렇게 바뀌어 왔던 것이 세계사적인 모습이었다. 한국 정치사도 역시 그러했는데, 윤석열 정부의 지금까지 통치의 상당 부분은그러한 ‘진화의 모습에서 퇴행하는 위험성을 다분히 드러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작금에 벌어지는 윤통 정권의 행태적 측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철학자는 그래도 희망을 가지려 했다. “만약 어떤 분이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그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두 날개로 한 공화국, 이게 바로 21세기적인 좋은 나라의 구체적인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자는 명문장가로 이름난 이우근 변호사였다. <중앙일보>에 명칼럼을 오래 연재했다. 좌장 김황식 전 총리가 그를 소개했다. 인문교양이 풍부한 그에게 시간 압박부터 했다. “저하고 대학교 동창이고 판사도 같이 했고 또 제가 평소에 아주 존경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제가 조금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라고.
이우근 변호사는 인문정신과 영성 회복을 강조했다. “민주화에 성공하고 선진화로 나아간다고 하는데 그 선진화는 사실은 인문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정신 고양은 ‘문사철’뿐만 아니라고 했다. 흔히 문학 역사 철학을 인문학이라고들 한다. 여기에 더해 종교와 예술까지, 5가지가 인문정신을 개발하고 고양시킬 귀중한 자양분이란다. 나는 토론자의 인사이트에 무릎을 쳤다. 더디고 힘들지만, 거기에 답이 있을 거다.
그는 종교가 유신론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했다. “인간 내면의 깊은 영성적 측면을 인식하고 있는 한, 무신론자에게도 종교적 성향은 있다고 봅니다.” 가장 보수적 토양에서, 가장 진취적 역사를 만들어 갔던 바탕이 인문정신이라고도 했다.
“제가 인문교육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교육계는 어떻습니까? 말할 수 없이 분열돼 있죠. 그래서 이거는 정치적 법적인 선도 역할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문사철뿐만이 아니라, 예술문화계와 종교계 모두가 각성하지 않는 한 우리 시민사회의 발전은 매우 암담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문정신은 실용적 정보만 마구 뽑아 쓰는 지식의 하드웨어가 아니다. “오래 묵히고 삭힌 참 지혜의 바탕자리”라고 이우근은 이날 갈파했다. 문사철을 넘어 예술과 종교까지 아우르는 고차원의 인문정신의 함양과 인문교육 말이다.
그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진보사상은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였다고 소개했다. 그것은 보수적 가치를 핵심으로 삼는다. 그 ‘오래된 새로움’의 깨우침, 보혁의 대립과 충돌만이 아니라 그 융화였다고 갈파했다. 개인의 진정성을 공공의 진정성으로 승화시킬 성찰적 시민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길 빌었다. 그는 인문정신의 고양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역할해 줄 것을 당부하며 말을 맺는다. 앞서 윤평중의 발제에 코멘트를 짧게 했다.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깊이 있는 성찰과 좋은 나라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좋은 설명을 해주셨다”고.
좌장 김황식은 벗 이우근을 높였다. “법률가의 토론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내용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 이우근 변호사는 그런 분입니다. 지금 극동방송에서 칼럼을 낭독하고, LA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으니, 기회 있으면 한번 찾아서 듣거나 읽어보십시오.”
나는 사실 윤평중도 윤평중이지만,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의 발제를 듣고 싶어서 거기를 갔다. 박지향 교수는 <동아일보> 기자를 잠시 했으니 선배다. 그렇기도 하지만, 역사학계의 족적도 굵고 깊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전개와 과제’라는 주제의 박지향 발제도 특출 났다.
토론자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빼어나게 압축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보였다. 두번째, 서희경 박사(서울대 연구소)는 ‘8.15 광복, 건국헌법과 자유민주주의 헌정체제’를 발제했다.
윤남근 변호사가 법률가답게 헌법 해석을 담아 발제를 보완했다. 2부 첫 발제자인 박찬욱 서울대 교수 역시 내공이 깊었다. ‘한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민문화의 현 좌표’가 주제였다. 총선 D-240, 꼭 8개월 앞으로 다가온만큼 그의 발제는 따로 소개를 할 기회를 잡겠다.
토론자 이용식 주필은 40년 언론인답게 논점을 단단히 잘 짚는다. 개판 오분 전, 정치와 정치꾼들의 질 저하 현주소를 통탄하며 정치인 충원구조를 짚었다.
비례대표제 폐지 또는 획기적 개선이 눈길이다. 발제자 박지향, 박찬욱 교수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통찰을 담은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글귀를 동시에 담았다. 2부 좌장인 명 진행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를 놓치지 않고 언급했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시도됐던 모든 다른 정부 형태들을 뺀다면 최악의…’
박찬욱이 각주에서 원문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Many forms of Government have been tried, and will be tried in this world of sin and woe. No one pretend that democracy is perfect or all-wise. Indeed it has been said that 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for all those other forms that have been tried from time to time…”
노벨문학상에 빛난 문장가 처칠의 통찰이 빛난다. 그가 갈파한 대로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다. 그 이전에 나온 모든 제도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두번째,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 한미동맹, 자유민주주의 가치 구현을 위한 연대’ 주제로 빼어난 발표를 했다.
토론자 조태열 전 유엔대사는 깊이와 통찰을 담아 발제를 빛나게 했다. 너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한두 분의 발제는 다시 소개할 생각이다. 종합토론에서 누군가 서희경 박사의 발제에 대해 조목조목 길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인상적이었다.
이종찬 광복회장의 취임사가 촉발한 건국절 논쟁과 관련해서다. 제헌의회의 속기록과 헌법 전문 만드는 과정을 꼼꼼하게 들이댔다. 좌장 이경숙은 섬세하게 마무리했다. “이 기상과 이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여…” 애국가 4절을 참 오랜만에 불렀다고 운을 뗐다.
총체적 아노미 상태에 빠진 듯한 작금의 사생결단식 진영 대립과 충돌, 대혼란을 극복하려면… 이경숙은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머리 속이 아니라 체화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대학총장을 지낸 분답게, 윤 정부가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제시한만큼 글로벌 시민교육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횡포로 변질될 수 있다. 작금의 개딸들과 같은 팬덤들의 광포한 만행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수가 옳다고 우기면서 선한 소수를 짓누르고 겁박하면, 그게 민주주의의 대의에 맞는가? 1인 독재나 과두 독재만 독재가 아닌 것이다. 파시즘은 늘 선전 선동에 포획당한 대중, 다수의 지지에 힘입었다. 지금 ‘좋은 시민단체’ 실종 사태다. 시민단체 역시 지난 정권 때는 국가권력에 포획당했다. 고 박원순 시장의 공과 과가 있을 거다. 하지만, 그의 최대의 과실은 ‘시민단체의 정치화’를 부추긴 거라고 필자는 본다.
‘시민단체와 국가권력의 일체화’는 참으로 비극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폐부를 찌른 건 윤평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깊이 새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