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믿음 좋은 행동 뒤에 숨겨진 저의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깼을 때 가룟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정의로운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의 뒤에 자신의 돈 욕심을 숨겼습니다.”(본문 가운데) 예수님 발을 씻기는 마리아


이사야 7장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 아하스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이사야 7:11-12)

아하스 왕은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표적이나 징조를 구하는 일은 믿음이 없는 행동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좋은 믿음이긴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당신이 메시아가 맞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출애굽 당시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이 진짜 있기는 한 건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시화하려는 일은 불경스러운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은 그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아하스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습니다. 앗수르에게 보험을 들어두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앞에서 겸손한 척하고 믿음이 좋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불신해서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하스는 왕으로서 체면도 챙기고 앗수르에게 들어두었던 보험금도 챙기려 했습니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이사야 7:13)

아하스 왕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날 머리를 굴려봐도 헛수고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밭을 팔아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헌금이라는 믿음 좋아보이는 행동 뒤에 자신들의 본심과 저의를 숨겼습니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깼을 때 가룟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정의로운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의 뒤에 자신의 돈 욕심을 숨겼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처럼 행세하면 사람들은 속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속아서 내 믿음이 좋은 줄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마음을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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