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노력하면 겸손해질까?

“겸손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내가 늘 교만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훨씬 더 실제적입니다. 교만한 줄 알고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겸손 아닐까요?”(본문 가운데) 사진은 아들 손흥민에겐 겸손 퍼스트를 늘 일깨워준 아버지 손웅진씨가 함께 훈련하는 모습.


이사야 16장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이사야 16:6)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교만한 사람은 안좋아 하십니다. 세상은 ‘겸손이 미덕’이라고 얘기하고 성경도 ‘교만은 망하는 지름길이고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겸손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 같습니다. 교만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과연 겸손이라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희안한 건 열심히 노력해서 내 교만을 꺾고 겸손해진만큼 우쭐한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도달하게 된 겸손한 상태, 그게 과연 겸손일까요? 교만한 인간이 겸손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해도 교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때로는 재수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면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지는 법을 잘 아는 교만이 생기고 만다는 것입니다.

겸손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실제로 겸손한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어쩌면 내가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교만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만은 반드시 하나님이 꺾으셔야 겸손이 됩니다. 내가 내 교만을 꺾으면 계급장이 될 뿐입니다.

채색옷을 입고는 절대로 겸손해질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노예의 옷도 입히시고 죄수복도 입히셨습니다. 겸손은 마치 고독과 절망 속에 삶이 푹 삶기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모두 증발된 후에 남게되는 결정체와도 같습니다. 모래를 씹다가 지친 삶의 한 켠에 나도 모르게 자리잡은 진주와 같은 것이 겸손이 아닐까요? 내가 겸손한 줄도 모르고 여전히 교만한 줄 아는 것이야말로 겸손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내가 늘 교만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훨씬 더 실제적입니다. 교만한 줄 알고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겸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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