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신운(神韻)…”몰아의 경지에선 사이비가 판 칠 겨를 없어”
소리꾼은 자신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판소리 가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정서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들의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실감 나게 표현해야 한다.
그러한 희로애락의 실감들을 진솔하게 그려내면서 자신이 아닌 극 중 인물로 빠져드는 몰아지경(沒我之境)의 운치가 생생하게 율동해야 좋은 소리가 나온다. 몰아의 경지에서는 사이비가 판을 칠 겨를이 없다. 여지없이 극 중 인물에 동화되어 내가 심 봉사인지 심 봉사가 나인지 피아의 구별이 없는 것이 몰아지경의 소리이다.
그러한 경지는 절대 쉬운 경지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해도 그러한 경지는 재주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재량할 수 없는 자비심과 사랑과 어진 마음을 지닌 광대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소리 공부는 재주를 성실하게 익히면서도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며 어질고 자애로운 인자측은(仁慈惻隱)의 마음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성음 속에 신운(神韻)이 생겨난다. 그러한 소리꾼의 신운을 이심전심으로 알아채어 염화미소(拈華微笑)로 답할 줄 아는 것이 바로 귀명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