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사는 게 짠하다

바위돌로 둘러 쌓인 곳에 핀 설악산 돌양지꽃 <사진 배일동 명창>

오래 전 남도 어느 섬의 보육원으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아직도 그날의 광경이 생생하다. 배를 타고 한 시간쯤 들어가자 아름다운 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육원 아이들이 나루터로 마중 나와 있었다.

보육원은 야트막한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꽤 많았다. 한쪽에선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서 경운기를 손질하고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선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놀고 있었다.

보육원 원장이 말하길, 이곳은 다섯 살 어린아이부터 고3까지 부모 잃은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고, 또한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허드렛일을 아이들이 도맡아 한다고 했다.

제법 큰 아이들은 논밭일도 거들고, 경운기를 손 보기도 한다고 했다. 오후엔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어주고 저녁엔 함께 온 동료들과 판소리 공연을 가졌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판소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뒤에 나는 「심청가」 중에서 ‘심 봉사가 아이 달래는 대목’을 불렀다.

“이리 주소 어디 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소 귀덕이네는 건너가고 아이 안고 자탄헐 제 강보에 싸인 자식은 배가 고파 울음을 우니 심 봉사 기가 막혀 아이고 내 새끼야 너희 모친 먼 디 갔다 낙양동촌 이화정의 숙 낭자를 보러 갔다 죽상제루 오신 혼백 이비 보러 갔다 가느 날은 안다 마는 오마는 날은 모르겠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너도 너희 모친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배가 고파 우느냐 강목수생이로구나.”

하필이면 왜 이 대목을 가뜩이나 서러운 처지의 아이들 앞에서 불렀는지, 나도 노래 중간쯤에 목이 막혀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애써 울음을 안 보이려 해도 감은 눈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말았다. 소리하는 도중에 보니 어떤 아이들은 벌써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가슴이 왈칵거려 도저히 소리를 부를 수 없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간신히 소리를 마쳤다.

소리판이 끝나고 그 슬픈 감정을 안은 채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뜰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녀석이 곁에 오더니, 며칠새 내린 비로 웅덩이에 고여 있던 황톳물을 나에게 물장구 치고 저만치 도망가는 게 아닌가. 그때는 내가 한복 생활을 하던 때라 그날도 무명으로 지은 새하얀 두루마기 바지 저고리를 입었는데, 흙탕물로 옷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래놓고 도망치는 그 녀석을 곧장 따라가 잡았는데, 똘망똘망한 눈가에 눈물이 축축해 있었다. 그걸 보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보듬고 말았다. 꼬마는 아무 말 없이 한참 있다가 그 자리를 떴다. 꼬마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왜 그리 사람을 슬프게 울리냐’고 말한 듯한 느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떠나올 때 그 녀석을 찾아보니 마당에는 안 보이고 방에서 창문 너머로 우리를 환송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비록 나이가 어렸어도 「심청가」 가사와 자기 처지가 비슷하여 울었을 것이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너도 너희 모친이 죽은 줄을 알고 우느냐” 하고 통곡하는 심 봉사의 애틋하고 서러운 정황이 그 아이에겐 가슴에 사무쳐왔을 것이다.

비단 그 아이뿐만 아니라 그날 그 판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랬을 것이다. 소리 속의 이심전심으로 동병상련의 애틋함을 느꼈을 것이다. 인생은 너 나 할 것없이 짠하다. 판소리는 바로 이러한 감동이 있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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