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시선] 강도근 명창이 남긴 말씀
귀명창도 단계가 있다.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기교나 성음과 장단 등 기본 형식에 대해 훤하게 알고 있는 귀명창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판소리의 형식미를 넘어 의경미까지 읽어내는 고단수의 귀명창도 있다. 그래서 소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 들려줘야 제빛이 난다고 말한다.
강도근 명창께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소리판은 옛날이 걸판지고 소리헐 맛이 났었재. 명창들이 소리한다고 허면, 온 동네가 난리가 난디. 인자 대갓집에서 저녁에 판을 벌이면, 저 건넛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재. 옛날에는 사람의 귀천을 따질 땐께 아무나 대갓집 마당으로 함부로 못 들어온단 말이여. 안마당으로 못 들어온 사람들은 담장 밖에서 얼굴만 삐쭉 내놓고 구경을 해. 명창이 소리를 허면 서민들은 글을 모릉께로 말허자면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성음으로 듣고 다 알아들어묵어. 흥부 마누래가 가난 타령으로 우는 대목을 허면 저 담장 밖에 간신히 서서 구경하고 있는 청중들이 훌쩍훌쩍 울었다네. 그러면 소리꾼도 애가 타서 기가 맥힌 성음이 나오재. 그런 판에서 소리가 안 나오게 생겼는가. 소리는 그럴 때 소리헐 맛이 나고, 또 소리꾼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재.“
강도근 명창은 소리의 진정한 가치를 말한 것이다. 가사의 구체적인 뜻은 몰라도 짠한 성음만 듣고도 이면을 알아차리는 그런 청중들 앞에서 소리할 맛이 났다고 말한다. 참 애틋한 맘이다. 고품격의 예술 격조를 논하는 귀명창들보다, 알 듯 모를 듯하게 흘러나오는 서글픈 성음만 듣고도 서러워할 줄 아는 청중 앞에서 소리할 때, 소리꾼으로서 살아 있는 복을 느낀다고 말한 명창의 악정(樂情)이 참으로 아름답고 아름답다.
그렇다, 소리꾼이나 귀명창은 예술의 엄격한 형식미를 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 사는 세상의 애틋한 정서를 읽어내는 것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