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소리꾼도 자기 소리밖에 모르는데, 하물며 청중이야…
산은 높을수록 인적이 드물고 계곡은 깊을수록 발길이 뜸하다.
조선 후기 유명한 악사 유우춘이 세인들의 섭섭한 예술적 안목을 말하자 옆에서 지켜본 유득공 선생은 그것을 글로 남겨놓았다. 어느 날 유득공이 해금을 잘 켜는 유우춘에게 묻기를, “나는 내 멋대로 벌레와 새가 우는 소리를 냈다가 남들로부터 ‘거렁뱅이 깽깽이’라는 비웃음만 샀다네. 너무 맘에 들지 않네. 어떻게 하면 거렁뱅이의 깽깽이가 아닌 다른 소리를 할 수 있겠나?” 하고 물었다.
유우춘은 이렇게 대답했다. “모기가 앵앵 우는 소리나 장인이 뚝딱대는 소리나 선비가 글을 읽는 소리나 모두 다 먹을 것을 구하는 데 뜻을 두는 소리들이니 다를 바가 없다.” 또한 그는 자신의 기술이 높아갈수록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유우춘의 해금 소리라고 하면 온 나라 사람들이 알지만, 정작 자신의 연주를 듣고 이해하는 자는 많지 않다고 말이다.
산이 높을수록 인적이 드물고, 계곡이 깊을수록 사람의 발길이 뜸하기 마련이다. 문외한들과 최고의 경지를 함께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오죽했으면 유협이 “정통한 음악은 일반적인 대중의 취향과 상충되니,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正音乖俗, 其難也如此)’”라고 했겠는가.
이동백 명창도 본인이 최고의 소리라고 생각하는 대목을 자신 있게 내놓으면 청중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니, 좋은 것을 내놓아도 좋은 줄 모른다고 푸념했다. 그렇다, 같은 길을 가는 소리꾼도 자기 소리밖에 모르는데, 하물며 청중이야 자신들의 얕은 오감이 작용하는 대로만 끌리지, 거기에 얼마나 깊은 예술적 심미안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