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자들 주목한 탈북 청년 “잡히면 자살하려 약 갖고 왔었다”

24일 연세대 대우관 109호에서 열린 탈북청년들의 강연장을 출입문의 핍홀로 바라본 장면. 이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얼굴과 신상정보는 기자들이 공개하지 않도록 했다.?<사진=민경찬 기자>

동서센터(East-West Center)가 주관한 국제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가장 눈길을 끈 세션 중 하나는 바로 ‘북한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24일 오전 11시부터 연세대 대우관 109호에서 열린 이들의 발표 세션에는 같은 시간대에 열린 7개 세션 중 가장 많은 50명 이상의 국내외 언론인들이 모여 이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김철수(가명, 30세)씨는 2006년 북한에서 제3국을 거쳐 온 가족이 함께 한국행을 택했다.

김씨는 “남동생과 여동생, 어머니는 지금 함께 살고 있지만 아버지는 북한에서 나오면서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남한에 대한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며 “남한 정보를 들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알게 됐는데, 그것은 내 생명을 걸고 올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탈북했다가 잡히면 자살하기 위해 약을 갖고 왔다”는 그는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들이 엄격한 처벌을 받느냐”고 물은 한 외국기자의 질문에 “난 한국으로 왔고, 그곳은 폐쇄된 사회이기 때문에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대한민국에 처음 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며 한국 도착 시기를 회상했다.

“북한에서 사고를 당해 목발을 딛고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휠체어를 갖고 마중을 나와서 환영한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자유로운 분위기도 적응하기 힘들었고, 사는 곳을 찾기도 힘들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로왔지만, 그 자유는 스스로 찾아서 누려야 하는 것이었다.

김씨는 처음 충청북도에 정착해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이 사회의 기득권은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단단했다. 대학에 가는 것이 이곳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컴퓨터도 전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컴퓨터 자격증부터 도전했다. 어려웠지만 북한에서부터 짚고 왔던 목발을 보며 힘을 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법률적인 부분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씨는 “북한에서는 법정에 갈 수도 없고, 법에 대한 중요성도 모른다. 한국에서 필요한 법률지식을 북한에 살았던 사람의 시선으로 가르치고 싶다. 지금 한국법과 북한법을 함께 공부하고 있다. 통일 후에 이런 지식을 활용해 통일 한반도의 법률제정에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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