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개혁은 스케일과 디테일보다 지속성이 더 중요”
열왕기하 23장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 23:25)
요시야는 다윗과 솔로몬 이후 최고의 평가를 받은 왕입니다. 그가 했던 신앙개혁은 스케일도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디테일까지 살아있었습니다. 성경은 요시야 전에도, 요시야 후에도 요시야와 같이 율법을 잘 지키고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이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이 평가가 최고의 칭찬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평가입니다. 요시야 이후에 그와 같은 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와 같이 신실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배출되었어야 하는건데 요시야 한 사람으로 끝난 것입니다.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종교개혁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요시야 시대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예레미야 1장 2절)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잘 하고 있을 때 예레미야를 보내셨습니다.
거룩한 반복의 연속
개혁은 스케일과 디테일보다는 지속성이 더 중요합니다. 한 번의 사건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사조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든, 루터의 종교개혁이든, 평양 대부흥이든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서 역사적 사건으로만 남아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개혁이나 본질로 돌아가자는 외침이나 과거의 단 한 번의 기념비적 사건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거룩한 반복이 없다면 “그 때가 좋았지” “그 시절이 좋았지” 하며 나도 모르게 과거의 인물과 사건 안에, 과거의 은혜 속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왕년 타령하다가 지금 여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