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팔자’를 뛰어 넘는 인생
“소명이 운명을 압도하고 중생이 태생을 뛰어넘어”
본문 역대상 5장
고대사회에서는 맏아들, 곧 장자가 다른 형제들보다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왕위는 장자를 통해 계승되는 것이 원칙이었고, 가문의 정통성 승계나 재산 상속에 있어서도 장자가 언제나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왕위의 계승이든, 가문의 정통성의 승계든, 재산 상속이든 꼭 장자를 통해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인데 야곱만 하더라도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 르우벤은 장자로 태어났지만 장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느니라”(대상 5:1-2)
원래 르우벤이 태생적으로는 장자입니다. 그러나 역대기는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다고 말하고, 마태복음의 족보에서는 메시아의 계보가 르우벤도 요셉도 아닌 유다를 통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고대근동의 문화를 따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당시 시대적 관습을 뛰어넘고 극복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태어났는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았는가’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운명을 따르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생년월일과 팔자가 인생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소명이 운명을 압도하고 중생이 태생을 뛰어넘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타고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에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