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길을 따르는 사람
열왕기하 15장
도를 아십니까? 도가 무엇일까요?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 때문에 천박한 질문으로 변질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기독교야말로 도(道)에 관한 진지한 질문이며 통찰이고 성찰입니다.
사방이 탁 틔어서 아무렇게 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 바다와 하늘에도 항로라는 것이 있듯 우리의 삶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요?
길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길을 따르는 사람, 길을 막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을 찾은 사람도 있고, 길을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길이 존재할 겁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길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평가로 ‘여로보암의 길’ 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왕상 15:34)
문제는 그가 만들었던 길이 없느니만 못했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수 많은 왕들이 여로보암이 냈던 길을 따르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이라는 찬양 가사가 있습니다. 은혜로운 찬양이지만 곰곰히 가사를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 걸어가면 없느니만 못한 길이 생긴다는 뜻도 됩니다.
시편 1편의 시인은 복(福)은 길(道)의 문제라고 첫 행을 썼습니다(시 1:1).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가리켜 길(道)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4:6).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라는 길을 걷는 사람이고 우리가 남긴 족적이 뒷 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됩니다.
그런데 같은 길 위에 있다고 다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처럼 길을 막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길을 만드는 사람, 길을 따르는 사람, 길을 막는 사람, 길을 잃은 사람, 길을 찾는 사람, 길을 안내하는 사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일로 우리의 걸음이 멈추어 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멈추어 세우시고는 물어보시는 것 아닐까요? ‘그 길이 맞냐?’ 나는 누구의 족적을 따라 걷고 있을까요? 그리고 나는 뒤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족적을 남기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