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이쯤 되면 하나님도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던 2020년 10월 장애인들로 구성된 비욘드무용단이 창단공연으로 ‘의문의려’를 무대에 올렸다. 작품은 부모가 자녀를 기다리는 마음을 비욘드무용단원들의 날갯짓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은 당시 공연 포스터.


열왕기하 1장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이후에 근 100년 동안 하나님과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예배의 처소에 가증한 우상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도 우리를 떠났다고 생각할만 합니다. 100년 동안이나 등을 돌린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100년이면 어떤 사람은 평생을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 관계 정리 통보를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스라엘은 이미 바알세붑을 섬기고 있었고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바알세붑의 뜻을 묻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왕하 1: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바알세붑에게 가느냐고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이 섭섭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은 아직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관계를 끝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직 끝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10년이든 100년이든 1,000년이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계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매순간이 계기이고 기회입니다. 기다리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늘 필요한 존재이길 바랍니다. 자녀가 내 필요를 채워주는 것보다 내가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며 더 큰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부모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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