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부활, 환상인가 역사인가?
동양사상은 자연에서 신성(神性)을 찾아왔고, 서양사상은 이성(理性)에서 초월자를 찾아왔다. 그렇지만 부활한 예수는 역사의 현실 속에서 신(神)의 모습을 나타냈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또렷이 목격한 사람들이 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한 예수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500여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목격했다고 증언한다(고린도전서 15:3~8).
이 증언은 부활의 목격자들이 아직 태반이나 살아있던 서기 56년경,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불과 20여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의 일이다. 거짓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당시의 유대사회에서는 어느 인간을 가리켜 신(神)이라고 고백하거나 죽은 누군가가 부활했다고 말하면, 중대한 신성모독으로 여겨 그를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었다. 그런 시대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공개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외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환상이나 거짓말 같은 신화 때문에 순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상, 성격, 성장환경, 사회적 신분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은 환상을 본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법칙(經驗法則)에 어긋나는 일이다.
신화란 모름지기 수백, 수천년 동안의 구전(口傳)과 해석 및 재해석 과정을 거친 뒤에, 영롱한 시적 감성(詩的 感性)과 의미심장한 종교적 은유(隱喩)의 광채로 윤색(潤色)되고 다듬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문자로 기록되는 법이다.
어떤 신화가 생겨난 지 불과 20여년만에 체계적으로 형성되어 문서로 기록되고 보존된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문화경험과 역사의식에 비추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신화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보았던 것은 결코 환상이나 신화일 수 없다. 생생한 현실로 나타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성서에만 기록된 사실이 아니다. 1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유대 고대사>라는 책에 이렇게 기록했다. “만일 예수를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죽은 뒤 다시 살아나 제자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메시야였다.”
크리스천이 아니었던 요세푸스가 유대 역사책에 예수의 부활사건을 기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반론(反論)도 없지 않지만, 아직까지는 이 기록이 조작된 것이라는 확증을 찾기도 어렵다.
인간이 영혼과 사유(思惟)능력을 지닌 생명으로 태어나, 씨를 뿌리고 경작하여 열매를 거두면서, 죽음 이후의 영원한 내세(內世)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놀라운 기적이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난 예수는 ‘부활의 몸’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갔다. 성육신과 부활, 이 두 기적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 영원의 세계로 올라간 것이다.
부활, 예수의 말씀으로 그 기적을 묵상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1장 25,2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