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살 수 있을 만큼 부유해서도 안 되고, 누구도 자신을 팔아야 할 만큼 가난해서도 안 된다.” 장 자크 루소가 <에밀>(Emile)에 쓴 말이다. 인격의 ‘가치’는 돈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다는 뜻이다.
돈으로 집을 살 수 있지만, 가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침대를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고, 시계를 살 수 있지만 시간을 사지는 못한다. 돈으로 책을 살 수 있어도 지혜는 살 수 없고, 약을 살 수 있어도 건강을 사지는 못한다, 돈으로 피를 살 수 있지만 생명을 살 수는 없으며, 유모를 구할 수는 있어도 어머니를 구할 수는 없다.
?이처럼 세상에는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 진리가 그렇다. 진리는 사거나 팔지 못한다. 진리의 가치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인류학자 마르셀 에나프(Marcel Henaff)는 <진리의 가격>(?Le Prix de la V?rit?)이라는 책을 썼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상업교환과 선물교환 곧 ‘시장의 거래관계’와 ‘인격적 유대관계’를 비교하면서,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선물교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요한복음 8:32). 그 진리에는 무한한 가치가 있지만, 가격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 값없이 주시는 그 은혜는 값을 매길 수 없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물’이라고 고백했다(에베소서 2:8).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상업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는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일 뿐, 은혜에 대한 대가나 보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대가가 따를 수 없다.
?미국 상원의 채플을 담당했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는 이렇게 탄식했다. “유대의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으며, 유럽으로 가서는 문화가 되었고, 마침내 미국으로 와서 기업이 되었다.”
미국인들의 신앙행태가 헌금을 바치고 현세적 복을 기원하는 상업적 거래관계로 변질되었다는 질책이다. ‘미국에서 기업이 된 교회가 한국으로 건너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헌금이나 봉사는 미래의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투자가 아니다. 진리에 대한 대가는 더더욱 아니다. 값없이 진리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는 우상숭배를 가장 엄중히 경계하셨다(누가복음 16:13).
교회는 재정으로 움직이는 이익단체가 아니다. 제자공동체의 재정을 담당했던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돈으로 팔아넘긴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예수님은 말씀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8) 복음의 진리는 ‘가격’이 없는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