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근 칼럼] 영광의 신학, 고난의 신학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마르틴 루터)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다. 거의 모든 교회당에 십자가가 걸려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중세 기독교를 지배하던 ‘영광의 신학’에 반대하여 ‘십자가의 신학’을 외쳤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이성의 힘으로 올바르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오직 몸소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것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다.

영광의 신학에 대응하는 ‘고난의 신학’인 셈이다.​

중세 스콜라철학을 이끌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기독교 교리를 종합해서 우주론적 기독교 신론(神論)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사변철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와 절대성을 논증하려는 시도다.

아퀴나스는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론적 유비(類比)를 통해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이 가능한 대상’으로 본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자이시고 자연계의 설계자이시며 자연계를 지배.유지하시는 힘의 원천이므로,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현상계를 통해 절대타자인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루터는 이것은 영광의 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십자가의 신학, 고난의 신학을 주창했다.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논쟁에서 ‘영광의 신학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뿐’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시고 드러내신다는 믿음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시를 파악하려는 이성의 모든 시도를 침묵시키는 ‘감추어진 계시’다. 

영광의 신학은 인간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을 향해 상승하려는 시도이지만,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셔서 인간이 되어 고통을 당하셨기에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신학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인간이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거나 이성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하는 이성신앙과 자연신학을 모두 부정한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 루터가 외친 십자가 신학, 고난의 신학이다.

현세적 축복과 성공을 약속하는 기복신앙, 높이 치솟는 교회당 건물들이 자랑하는 영광의 신학이 드넓게 퍼져가는 오늘날, 루터가 품었던 십자가의 신학, 고난의 신학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신앙적 과제로 다가와 있다.

​고난의 신학은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한다. ‘제자도(弟子道)의 핵심이 십자가’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통과 시련을 주신다. 인간의 교만과 자만심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겸손의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서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회상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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