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허세 부리다가 딸을 잃은 사사 ‘입다’

“당시 가나안 땅에는 인신제사가 있었는데 입다 사고 방식 속에는 이 이방종교의 제의가 자기도 모르게 깊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고대 근동지역의 다른 신들처럼 인신 제사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본문 가운데) 이미지는 구약시대 당시 가나안 족속들이 자신의 아이를 몰렉신에게 바치는 모습이다.


사사기 11장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 11:30-31)

사사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받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서원을 합니다. 입다의 서원으로부터 두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입다의 성격입니다. 승리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입다의 신앙관입니다. 사람을 제물로 드리겠다는 입다의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당시 가나안 땅에는 인신제사가 있었는데 입다 사고 방식 속에는 이 이방종교의 제의가 자기도 모르게 깊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고대 근동지역의 다른 신들처럼 인신 제사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요? 유교적 사상이 공동체의 관계 속에 스며있지는 않은지, 불교적 수행 영성이 구원의 필요충분 조건 속에 배어든 것은 것은 아닌지, 무당과 목회자를 비슷한 맥락에서 대하는 것은 아닌지, 보름달 아래 정한수 떠다놓고 비는 것과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다른지 곰곰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사후 세계관은 순전히 성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아니면 성경을 접하기 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던 내세관을 바탕으로 성경에 나오는 천국과 지옥을 읽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입다는 딸이 마중나왔을 때 아차 싶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회개하면 될 것을 기어코 딸을 제물로 바치고 맙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뿌리 깊은 허세와 자존심, 목표에 대한 집념을 신앙심과 혼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사기 11장 9절에는 그가 전쟁에 참전한 동기가 드러나 있습니다. 입다의 관심은 오로지 누군가의 머리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목표 의식이 신앙으로 포장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입니다. 입다는 자신이 목표하던 바를 이루는데 딸을 희생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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