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렌즈 판소리] 김소월 시 ‘고락’과 ‘바위’와 ‘솔낭구’

“큰바우, 사람이 등에 한 짐 짊어졌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기구한 발부리만 보지 말고서
때로는 고개들어 사방산천의
시원한 세상풍경 바라보시오

먹이의 달고 씀은 입에 달리고
영욕의 고(苦)와 낙(樂)도 맘에 달렸소
보시오 해가 져도 달이 뜬다오
그믐밤 날 궂거든 쉬어 가시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숨차다 고갯길을 탄치 말고서
때로는 맘을 녹여 탄탄대로의
이제도 있을 것을 생각하시오

편안이 괴로움의 씨도 되고요
쓰림은 즐거움의 씨가 됩니다
보시오 화전망정 갈고 심으면
가을에 황금이삭 수북 달리오.

칼날 위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물속에 몸을 던진 몹쓸 계집애
어쩌면 그럴 듯도 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줄은 왜 몰랐던고.

칼날 위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자기가 칼날 위에 춤을 춘 게지
그 누가 미친 춤을 추라 했나요
얼마나 비고인 계집애던가.

야 말로 제 고생을 제가 사서는
잡을 데 다시 없어 엄나무지요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길가의 청풀밭에 쉬어 가시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기구한 발뿌리만 보지 말고서
때로는 춘하추동 사방산천의
뒤바뀌는 세상도 바라보시오.

무겁다 이 짐을랑 벗을 겐가요
괴롭다 이 길을랑 아니 걷겠나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보시오 시내 위의 물 한 방울을.

한 방울 물이라도 모여 흐르면
흘러가서 바다의 물결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 됩니다
다시금 땅에 내려 비가 됩니다.

비 되어 나린 물이 모둥켜지면
산간엔 폭포 되어 수력전기요
들에선 관개 되어 만종석이오
메말라 타는 땅엔 기름입니다.

어여쁜 꽃 한 가지 이울어 갈 제
밤에 찬이슬 되어 추겨도 주고
외로운 어느 길손 창자 주릴 제
길가의 찬 샘 되어 누꿔도 주오.

시내의 여지없는 물 한 방울도
흐르는 그만 뜻이 이러하거든
어느 인생 하나이 저만 저라고
기구하다 이 길을 타발켰나요.

이 짐이 무거움에 뜻이 있고요
이 짐이 괴로움에 뜻이 있다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다운 사람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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