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강수연 유작 ‘정이’ 글로벌 정상···김현주 “현장에서는 선배·어른 아닌 그냥 동료였다”

강수연 유작 <정이>


임권택 감독 “좋은 얼굴 가진 강수연···내 영화가 빛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정이>가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정상에 올랐다. 한국을 비롯, 미국 브라질 베트남 스페인 등 31개국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평점 685점으로 2위 미국 <우리집 개를 찾습니다>(439점)와 격차가 컸다.

<정이>는 연상호의 SF 작품으로 1월 20일 공개됐다. 2194년 인류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우주 ‘쉘터’로 이주한다. 내전이 일어나, 사람들은 전설적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한 A.I.를 개발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배우 김현주가 정이 역을 맡아 인간과 인공지능 두 가지 모습을 연기했다.

드라마 <지옥>에 이어 연상호와 재회한 류경수는 연구소장 ‘상훈’으로 나온다. 강수연은 연구소에서 개발에 몰두해 있는 팀장 윤서현으로 생전에 열연했다.

엔딩 사인으로 고 강수연 배우를 추모한다는 글이 떠 새삼 고인이 생각난다.

SF영화는 내 취향에 별로 맞진 않지만, 그런대로 볼거리가 풍부해 볼만하다. <정이>는 작년 세상을 떠난 강수연의 유작이기도 하다. 월드스타였던 고인은 작년 5월 5일 뇌출혈로 인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못 찾고 이틀 뒤 끝내 별세했다.

강수연에게 <정이>는 2013년 단편영화 <주리> 이후 9년 만의 복귀작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스크린 복귀만을 남겨뒀던 탓에 팬들의 안타까움은 더 컸다.

비보가 들려온 날 연상호 감독은 페북글로 고인을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분”이라고 추억했다. “선배님 편히 쉬세요. 선배님과 함께한 지난 1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애도했다.

배우 강수연·김현주·류경수(왼쪽부터) <연합뉴스, 씨네21·YNK엔터테인먼트·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연상호 감독과 출연 배우들은 고인과의 추억을 최근까지도 회상했다 한다. “윤서현이라는 인물을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갑자기 강수연 선배 이름이 떠올랐고,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연상호)고 했다.

고 강수연이야말로 넷플릭스 정상에 오른 이 영화 제작과 기획의 원동력이었다.

“선배님을 처음 뵙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현장에서는 선배, 어른이 아니고 그냥 동료였다. 누구보다 진지하셨고 열정적이셨다.”(김현주)

넷플릭스는 <정이> 공개 기념으로, 강수연 출연작 <씨받이>와 <경마장 가는 길>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상자료원과 협업, 시청자들이 강수연의 대표작 두 편과 최신작을 동시에 만날 수 있게 했다.

<씨받이>는 거장 임권택 연출로, 열연한 강수연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유교 질서가 지배하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양반 집의 대를 잇기 위해 대리모인 <씨받이>로 들어가게 된 주인공이 겪는,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사랑과 운명을 그린 영화다.

당시 파격적 미장센과 공고한 신분 질서에 맞서는 주인공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그렸다. 아시아권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강수연은 <씨받이>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1년 개봉작인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은 당시로선 금기시된 소재였다. 성 담론과 지식인의 이중성을 도발적으로 제기해 문제작으로 떠올랐던 작품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붐을 일으켰던 하일지 원작의 <경마장 가는 길>을, 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다는 호평의 장선우가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일으켰다.

“너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냐”는 대사와 함께, <경마장 가는 길>은 새 스타일과 개성적 캐릭터, 파격적 스토리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상찬을 받았다.

강수연은 <경마장 가는 길>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석권했다. <정이>로 강수연을 만난 뒤 에너지와 매력,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20대 강수연을 만날 기회다.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는데 훨씬 어린 사람이 먼저 가니까…. 좀 더 살면서 활동도…아깝죠.”(임권택)

당차고 예뻤던 고인을 아낀 거장 임권택은 “좋은 얼굴을 가졌다…내 영화가 빛났다”고 회고했다.

강수연 생전에, 현장에서 치열하게 스태프들과 배우를 응원하는 똑 부러진 여자였다. 그래서 “지나치게 똑소리가 나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너무 잘나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많은 영화인들과 팬들은 고인의 이 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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