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7일 강수연씨 1주기 “추락하는 한국영화에 희망의 불씨를”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아제아지바라아제에서 강수연씨

7일은 한국 영화계 최초의 ‘월드 스타’ 강수연(姜受延) 배우가 뇌출혈(腦出血)로 56세를 일기로 별세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강수연씨는 작년 5월 5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에 의한 심정지(心停止, cardiac arrest)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사흘만인 7일 오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영정 속 강수연씨

“별보다 아름다운 별, 안녕히”이라는 문구가 적힌 근조 플래카드가 영정(影幀)사진 위에 걸려 더욱 팬들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영정사진은 구본창 사진작가 작품으로 2004년 패션잡지 ‘바자’ Timeless Beauty 화보용으로 찍었다가 실리지 않은 B컷으로 빨강·하양 줄무늬 상의를 입은 채 팔로 목을 감싼 모습이다. 장례는 영화인장(위원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으로, 화장 후 용인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배우 강수연씨와 임권택 감독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前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이렇게 추도했다.

“오늘 우리 영화인들은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연씨,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두집에서 만난 지 한 달로 채 되지 않았는데 졸지에 제 곁을 떠나다니.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모스크바에서 처음 만난 지 33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왔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는가요?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멍에를 지고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신은 지혜롭고 강한 분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도 않고, 타고난 미모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춘, 남자 못지않은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이끌었습니다. 이에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타고난 연기력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기대했는데,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응급실에서 또 중환자실에서 비록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당신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비록 강수연씨 당신은 오늘 우리 곁을 떠났어도 지상의 별이 졌어도, 당신은 천상의 별로 우리들을 지켜줄 것입니다. 강수연씨 부디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으로 영화제는 200여 개가 있으며, 이 중에서 3대 영화제는 프랑스 칸영화제,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독일 베를린영화제이다. 강수연은 1987년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아시아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9년에는 소련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다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전도연(200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윤여정(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보다 20-30년 앞선 쾌거였다. 강수연은 한류의 씨앗을 뿌렸으며, 영화인들 가슴에 “우리도 가능하다”는 웅지를 심어주었다.

1966년 8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난 강수연은 4세 때부터 아역(兒役)배우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여 ‘연기 천재’ 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최고의 하이틴 스타가 된 강수연은 한국 영화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 싱그러운 청춘(靑春)역,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에서 거친 풍파 속 창녀(娼女)역, <연산군>에서 희대의 요부(妖婦)역 등으로 변신했다.

강수연 유작 <정이>

1990년대에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을 비롯하여 많은 흥행작을 냈다. 강수연은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강수연은 치열한 연기 근성 때문에 ‘독종’으로, ‘깡수연’으로도 불렸다. 그는 헌신하는 전통적 모습과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 여성상을 모두 지니고 있다.

배우 강수연의 미공개 유작(遺作)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Netflix) SF(science fiction) 공상과학영화 <정이>(JUNG-E)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는 2013년 단편 <주리> 이후 9년만의 영화계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영화 <정이>는 기후변화로 더 이상 지구에서 살기 힘들어진 인류가 만든 피난처(shelter)에서 내전이 일어난 22세기, 승리의 열쇠가 될 전설의 용병 ‘정이’의 뇌(腦)복제 로봇을 성공시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수연은 배우로만 머물지 않았다. 2000년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부단장을 맡아 집회와 행사마다 앞장섰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996년부터 사회자·집행위원으로 해마다 참석해 ‘영화제의 안방마님’으로 불렸다. 2015-17년엔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는 리더십과 추진력이 강한 여걸(女傑)이었다고 영화인들은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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