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내가 만든 하나님

구약시대에나 현대에도 우상숭배의 본질은 같다. 그림은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소원을 비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출애굽기 32장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 32:4)

아기들은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엄마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웁니다. 잠깐 어디 갔다 온다고 해도 엄마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기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기에게도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습니다. 자신의 눈을 믿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에 대한 절대적 확신, 이것이 인간 믿음의 출발입니다. 말을 배우기도 전에, 걷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신뢰하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그래서 사람은 눈으로 보고 확인하면, 그때부터 믿는다고 합니다. ‘보여주면 믿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진 신앙고백 아닐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모세가 40일간 자리를 비웁니다. 이 때 이스라엘은 유아기적 신앙 반응을 보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모세를 바라보고 왔습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보이는 분은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모세 하나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모세가 수십일 동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었습니다. 눈으로 보며 안심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전능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무능한 우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앙의 대상이 어떤 존재인가보다 당장 내 마음이 편한가 이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금송아지란 자기만족, 자기위안의 대상이었습니다. 나 편하자고 믿는 신, 내 문제만 해결해주면 그것이 송아지든 두꺼비든 괜찮다고 하는 것, 그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오늘날 여전히 금송아지 버금가는 우상들이 즐비합니다. 불안과 염려, 바람과 욕심, 과학과 이성, 부와 권력, 문화와 감성, 성공과 쾌락, 대중의 지지 등 이러한 재료들을 잘 섞으면 그 비율에 따라 내가 믿기에 편리한 다양한 하나님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를 만든 신을 믿고 있을까요? 아니면 내가 만든 신을 믿고 있는 걸까요? 내가 만든 신을 믿고 있으면서 진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봅니다.

오늘도 하나님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깎고 다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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