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내 이름 아시죠

“친구의 특권이란 서로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함이나 직책이 아니라 이름으로 아는 관계가 친구입니다. 나를 직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사진 김희봉 아시아엔 편집위원>


출애굽기 35장

한국 사회에서는 어른이 되면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점점 적어집니다. 어릴 적에는 대부분 ‘누구누구야’라고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이름 외에 다른 호칭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직장에서 불리는 호칭이 있고, 교회를 다니면 교회에서 불리는 호칭이 따로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어른이 된다는건 이름보다 직함에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직함에 속고 직위에 속습니다. 직함이 달라지면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면 내 인격이 달라진 줄 스스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직함과 직위 뒤에 내 진짜 모습을 숨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게 한 꺼풀만 벗기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요? 직함을 다 떼고 남은 이름 뒤에는 숨을 공간이 없습니다.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 33:17)

하나님은 우리를 직함으로 알지 않으시고 이름으로 아십니다. 사장이나 선생으로, 장로나 집사로 알고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찾아가신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직함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이름을 부르셨고, 새 이름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 33:11)

친구의 특권이란 서로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함이나 직책이 아니라 이름으로 아는 관계가 친구입니다. 나를 직함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4-15)

하나님 앞에서까지 장로, 권사, 집사, 목사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장이나 사원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나’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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