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더 이상 복이 필요 없는 사람’
창세기 47장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 47:9-10)
요셉이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파라오를 만나게 합니다. 창세기 47장 7절 이하에는 파라오와 야곱 둘 사이에 나눈 대화가 짧막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늘 복에 목말랐던 사람입니다. 남의 복을 빼앗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야곱입니다. 얍복 나루에서 만난 하나님에게 나를 축복하기 전까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며 목을 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만약 야곱이 젊은 시절에 파라오를 만났다면 그는 어땠을까요? 하나님을 붙들고 나를 축복하라고 고관절이 어긋나기까지 매달렸던 야곱이었습니다. 아마 파라오를 붙들고 뭐라도 하나 받아내지 않았을까요? 이집트에서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보장이나 시민권이라도 얻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마치 부러움도 부족함도 전혀 없는 사람마냥, 당시대 초강대국의 수장을 도리어 축복합니다. 내가 복 받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야곱이 남의 복을 빌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파라오인데 말입니다.
파라오가 야곱에게 나이를 물어보자 야곱은 “내 나이가 130세인데 참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보통은 인생의 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은 그걸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어합니다.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었는지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눈빛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아련함 한 줄기로 그 모든 설명을 대신하지 않았을까요?
야곱은 짧막한 대답 한 마디와 더불어 파라오를 축복하고 그 자리를 훌쩍 떠납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나갔을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야곱이 아닙니다.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다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낚아챈 기회주의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파라오 앞에서도 여유가 넘치는 한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다리 저는 노인이었지만 권력자의 위엄에도 눌리지 않는 거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더 이상 복에 목마르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