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에서-야곱 형제의 화해를 향한 빌드업

페테로 파울 루벤스 작 <야곱과 에서의 화해>

창세기 33장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4)

20년 만에 형과 동생이 재회합니다. 20년 전, 동생은 형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야반도주했고, 형은 동생을 죽이고도 남을 만큼 미웠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기억이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야곱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가족 전체가 몰살 당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그의 온 몸을 휘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족과 재산을 나누어 편대를 짠 것이죠. 형은 그 사건 이후 20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내가 형에게 남긴 깊은 상처가 형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심란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아픔도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지는 기억도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분한 사건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모든 주변 정황은 사라지고 분노만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생이 자신과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이고 자기의 몫을 싹쓸이 해간 사건이 20년 동안 에서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채색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조마조마한 마음과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형에게 다가서는데 형이 달려와 자신을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냅니다. 아마도 야곱은 시간이 멎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무엇이 형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그저 20년의 세월 때문이었을까요? 절뚝거리는 동생이 불쌍해서였을까요? 마음이 꼬이면 뭘 봐도 꼬아서 봅니다. 아무리 다리를 절어도 밉게 보면 밉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야곱의 20년 세월만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에만 역사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야곱의 이야기만을 읽느라 에서에게는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인생에도 일하고 계셨다는 것을 이 화해의 순간에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두 형제의 화해는 하나님께서 20년을 공 들이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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