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기울어진 사랑이 만든 삐딱한 세상

‘꿈을 형제들에게 이야기하는 요셉’, 라파엘로


창세기 37장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창 37:3)

야곱은 자신의 열 두 아들 중에 요셉을 제일 사랑했습니다. 요셉에게만 명품 옷을 입혔습니다. 위기 때에 다른 아들들은 전방에 총알받이로 세우고 요셉만 제일 안전한 후방에 두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형들은 요셉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것입니다. 형들은 꼴도 보기 싫은 요셉을 결국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자기 동생을 인신매매 한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가족 안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비교는 비극을 낳습니다. 야곱이 다른 아들들을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요셉을 더 사랑했을 뿐입니다. 다른 아들들은 덜 사랑스러웠습니다.

덜 사랑하는 게 안 사랑하느니만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기대도 하지 않을 텐데 덜 사랑하니까 늘 문제입니다. 가장 큰 상처는 사랑받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사랑받는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야곱 자신도 그렇게 자랐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야곱보다 형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것이 늘 불만이었을 텐데 본인도 아버지가 되어서 동일한 일을 반복합니다.

이것이 야곱 가족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부모가 최선을 다해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도 부모를 다른 부모와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사랑을 줘도 사랑으로 받을 줄 모르는 게 인간이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질투와 갈등이 늘 끊이지 않습니다. 다들 더 사랑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고, 덜 사랑받아 항상 섭섭합니다. 그런데 한 개인 안에 있는 사랑의 총량이 한 두 사람 충분히 사랑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제한적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고질적이고 본질적인 애정결핍을 해결하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랑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애정결핍증의 근본적 치료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에서가 어떻게 화해했는지, 요셉과 요셉의 형들이 어떻게 화해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울어진 사랑이 만들어 놓은 삐딱한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균형감각, 그것이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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