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만사형통보다 더 큰 형통, ‘믿음직스러움’

요셉(오른쪽)을 유혹하는 보디발 아내, 레니 귀도 작품(17세기)


창세기 39장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창 39:4)

혹시 전재산을 맡겨야 한다면 누구에게 맡기시겠습니까? 자동차 키,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인감도장, 신용카드와 같은 것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사람에게 맡겨야 안심이 될까요? 아무리 일을 잘 하고, 능력이 좋고,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라도 못 믿으면 못 맡깁니다. 잃어버려도 괜찮은 것은 아무에게 맡겨도 상관이 없지만, 전재산을 맡겨야 한다면 신뢰가 절대적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보디발은 자기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합니다. 자기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 메뉴 외에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기고 일절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의 경호대장 집에 일 잘 하는 사람이 한 둘이었을까요? 능력있는 사람 엄청 많았을 겁니다. 요셉이 달랐던 점은 주인이 자기 소유를 그에게 다 맡길 정도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일 잘 하는 사람은 많은데 어느 분야나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매사에 그를 형통하게 하신다'(창 39:3) 이것이 요셉에 대한 보디발의 평가입니다. 믿음직스러운 요셉에게서 보디발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형통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의 인생은 형통하지 않았습니다. 애굽 노예로 팔려와서 가정총무 정도 된 것 가지고 형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명을 쓰고 투옥되어 감옥살이 하다가 감옥의 제반 사무를 도맡아 하게 된 것이 형통입니까?

성경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에게 형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노예였을 때, 그리고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 요셉의 인생이 형통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만사형통의 의미와 다소 다른 의미인 것이 분명합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되지 않았어도 요셉은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성공적 결과물이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약 성공적 결과물만을 형통이라고 한다면 내가 형통할수록 남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형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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