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사회사]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마, 법관은 있으나 검·경은 없어”
그리스의 도시국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범죄는 당사자가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살인조차도 피해자가족이 처리해야 하는 복수 또는 투쟁으로 봤다.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국가노예 스키타이출신 궁수Scythian Archer 300명(최성기에는 1200명)을 치안에 투입했다. 주 업무는 집회의 질서유지와 군중관리로 수사에서는 배제시켰다. 범죄자 체포와 죄수관리만 보조시켰다.
스파르타의 치안은 국가의장대로부터 선발한 히페우스hippeus(기마경찰)가 수행했다. 감독은 에포(Ephor, 민선장관)가 맡았다.
polis가->police로
그리스의 2천개나 되는 도시 하나하나가 국가city-state였다. 인구는 아테네처럼 큰 곳은 25만, 보통은 몇 천명 정도였다. 이 도시정부polis가 라틴어->프랑스어와 영어의 경찰police이 됐다.
로마
기원전 753년 건국->395년 동서로마로 분열->476년 서로마 멸망->1453년 동로마 멸망의 길을 걸었다.
법원과 법관은 있었다. 검사는 없었다. 사건사고는 피해자가 조사-소추했다. 경찰은 없었다. 주민이 주민 자신을 지켰다. self-help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27년 초대황제가 됐다. 인구 100만의 로마에 세 치안기관을 출범시켰다.
치안은 도시야경대 ‘어반 비질레’가 맡았다. 로마시를 24개 구역ward으로 나누고 2개 구역마다 1개 대 1천명을 배치했다.
대원은 해방된 노예인 자유민 중에서 뽑았다. 기존 7백명의 노예소방대도 흡수했다. 기본업무는 야경과 소방. 경미한 사범의 체포, 도망노예 검거, 목욕탕 경비, 소란행위 단속도 다루었다.
황제경호대(프라이토리아니)는 황제, 황족, 저택의 경호경비부대다. 도시경비대(어반코호트)는 주요시설경비가 임무다. 두 부대는 ①임무의 특성과 중요성에 비추어 이탈리아인에게만 지원할 자격이 주어졌다. 인사검증에 신경을 썼다. ②도시야경대(어반 버질레)만으로는 다루기 힘든 부문을 보완, 지원했다. 특히 대형 행사와 공연 및 경기의 군중경비와 폭동진압을 담당했다.
경호공무원 릭토lictor도 있었다. 요원선발에는 전역한 군 간부가 우대받았다. 직급별로 배치인원이 달랐다. 황제와 집정관 12명~법무관 6명~법관 1명이었다.
그 먼 옛날에 도둑?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채집하여 먹고 살던 hunter-gatherer의 원시공산사회에서도 슬쩍 하는 심리는 역시 존재했다. 버릇됐다. 고대 로마 시인 데키무스 유니우스 유베날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물쇠를 채우고 빗장을 아무리 단단히 질러도 모든 도둑을 막아낼 수는 없다.” 옳은 말이다.
불교-천주교-개신교-이슬람교의 계율 중 공통사항은 ①살인하지 말라 ②도둑질하지 말라 ③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허위증언하지 말라 등이다.
누가 잡았나?
길에는 강절도-소매치기가 있었다. 산길에는 산적이 있었다. 바닷길에는 해적이 있었다. 빈집털이라고 빠질 손가.
불량배와 깡패가 설쳤다. 약골로 보이면 “어이, 너, 이리 와.” 으슥한 뒷골목에서 턴다. 왕따-따돌림도 그제나 이제나 같다.
죄와 벌, 그리고 유무죄 따져 벌주는 법관이 존재했다. 기록하는 서기는 있어도 검사와 경찰관은 없었다. 경찰 일은 야경으로 노예나 노예로부터 해방된 자유민freedman이 했다. 전과자도 받아들였다.
책임자는 충성심과 출세욕 강한 시민이나 귀족이었다. 주된 관심사항은 반란예방과 통치자에 대한 모독죄-불경죄 단속이다. 소문과 민심동향도 파악해 보고를 올렸다.
시장의 빵 값과 빵 만드는 곡물가격에는 민감했다. 비싸거나 품귀현상이 일어나면 폭동이 일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 이와 더불어 치안조직도 소멸했다. 부자들은 내 돈 들여 방범설비를 했다. 경비원 고용에 나섰다. 중세(medieval times, 中世)에도 별반 다름이 없었다. 교역을 통하여 돈을 벌고 자치권을 산 도시가 많아졌다. 야경을 돌렸다. 그 이외의 지역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주민 스스로 안전을 지켰다.
그리스어 도시 polis都市는->라틴어 politia->프랑스어 police가 되어 오늘날까지 살아있고->영어에도 들어갔다. 프랑스와 브리튼에서 15세기 말에는 공공질서public order로 뿌리내렸다.
그 이후 영어에서는 1530년대부터 지역사회의 규제와 통제regulation and control of community라는 명사로 쓰였다. 1580년대에는 질서를 지킨다는 to keep order in이라는 동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