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묵상] “혹한과 경제난에 위협받는 북한 주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출근길 평양시민들. 2016년 겨울 사진이다. 지금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연합뉴스>


함께 기도할 제목

1. 말씀 안에서
– 왕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 나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혜를 얻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
– 혹한과 경제난 속에 생존을 위협받는 북한 주민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 한반도 안에 계속되는 긴장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덮어주소서

3. 교회와 선교
– 연약한 지체를 돌보아 함께 힘을 얻는 교회 공동체 되게 하소서
– 교회가 성탄의 의미를 바로 전하도록 사랑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조정민 목사의 12줄 멘트

전도서 8:1-8 “얼굴이 바뀌는 지혜”
1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1. 누가 지혜 있는 사람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당연히 우리는 지혜란 무엇인가 묻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2.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상황에 정확히 대처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지혜롭게 일한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3. 지혜자는 지켜보면 모든 일에 합당한 때를 알고 그에 맞는 합당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누가 모든 일에 실수 없이 능할 수가 있습니까?

4.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한계를 알고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아는 것을 오히려 지혜롭게 여기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합니다.

5. 전도자도 그런 지혜자라면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말합니다. 나름대로 오랫동안 관찰했겠지요. 지혜로운 사람들을 지켜보았겠지요.

6. 재미있는 표현은 사람이 지혜로워지면 사나운 얼굴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얼굴을 찌푸리고 사는 사람과 분명 다른 면입니다.

7. 무엇 때문에 지혜와 어리석음이 얼굴의 모습과 얼굴 빛을 갈라놓을까요? 자신과 인간의 한계, 삶의 모순과 불합리성에 대한 태도입니다.

8.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겸손의 토양이기도 합니다. 겸손은 참 어려운 성품입니다. 그러나 생각에 달렸습니다.

9. 자칫 우리는 나의 무지와 무능을 많이 생각하면 겸손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무력감 열등감에 빠집니다.

10. 겸손은 한계를 지닌 나 자신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한한 존재를 많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생각에 달렸습니다.

11. 겸손하기 위해 노력하면 십중팔구 위선으로 빠집니다. 얼굴은 기쁨이 없고 사나운 속을 감추는데 아주 능숙한 기이한 밀랍인형이 됩니다.

12. 지혜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기뻐하기에 순종이 익숙합니다. 은혜가 흘러 평강을 이룹니다. 그런데 얼굴이 왜 안 바뀌겠습니까?

베이직교회 아침예배(12.21)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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