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산책] 이병철 ‘애련일지’···”연꽃 만나고 온 바람”
여류 이병철, 하늘과 가슴에 핀 연꽃과의 사랑 노래
스마트폰 사진작가가 찍고 쓴 170쪽의 사진 산문집
불가에서 드높이 치는 연꽃은 ‘선비의 꽃’이다. 여류 이병철은 올해 73세, 여전히 감수성은 문청이다. 미디어빌과 아시아엔에 사진에세이를 기고해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달 말 펴낸 책이름이 <애련일지>(愛蓮日誌)이니, ‘연꽃사랑 일기’라고 번역해야 할까?
나는 이병철의 집이 있는 경남 함안의 시골 동넷집인 수리재에 몇 번 갔다. 자고 온 일도 올해만 두어 번 된다. 그때마다 연꽃 보러 갔다. 그는 연꽃테마파크에 피어난 연꽃들을 찍을 때 거의 구도자처럼 연꽃을 응시한다.
태산처럼 고요하기를
바람처럼 자유롭기를
꽃잎처럼 부드럽기를
햇볕처럼 따스하기를
불꽃같은 사랑이기를
그가 상재한 책의 서문에는 이런 말들부터, 시일 것 같기도 한 글들부터 눈을 붙든다. “흔히 지상에서 피는 천상의 꽃이라 하여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과 찬사와 칭송을 받아왔던 연꽃이 피었다가 지는 기간 내내 사진 찍는 것에 대해 제대로 배운 바가 없는 지은이가 그 연꽃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담고, 연꽃과의 만남 속에서 느낀 그때의 소회와 함께 페이스북으로 나누어 왔던 글과 사진을 묶어 출간한 사진산문집이다.”
그의 연꽃 사랑은 천석고황에 빠져든 우리 옛 선비들을 연상케 한다.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갖고자 하는 것이 세속을 사는 이들의 욕심이듯, 여기 실린 글과 사진은 2022년 여름 한철(6월 14일부터 9월 2일) 동안에 지은이가 매일마다 찾아나선 연꽃과의 만남을 사색과 성찰의 시간처럼 일지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여류 이병철은 “사랑을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라 한다면, 연꽃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그 사랑법이라 할 수도 있겠다”고 한다. 구도하듯 수행하듯 찍은 그의 연꽃사진들에는 여류의 연꽃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다.
여류는 1949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물빛 푸른 통영에서 지냈다. 나도 통영이 뿌리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영어의 몸이 된 일도 있는, 마음이 더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농민 및 사회운동을 해오다 결국 생명평화생태운동으로 귀의했다. 1996년, ‘생태 가치와 자립하는 삶’을 내걸고 생태귀농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전국귀농귀촌운동 본부장, 녹색연합 대표, 녹색대학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생태산촌만들기, 생명의숲국민운동 등 생태 및 환경단체와 늘 함께였다. 함안에 귀농, 텃밭 가꾸며 생명평화를 화두로 도반들과 생태적 사회와 신령한 짐승이길 꿈꾼다.
그는 조직전문가다. 그래선지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늘 성심과 성의가 배어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을 그는 만나지 않으려 한다. 단 예외가 장기표 선생이다. 그만큼 운동을 하되, 속물적 운동에 흐르지 않으려고 부단히 심신을 닦고 닦는다.
운동을 떠났다 말하기도 한다. 실물 정치의 악취가 밴 그런 운동에서 떠난 걸까? 인류의 존속이 끝나는 멸절이 닥쳐오고 있음을 경고하는 징표들이 도저하다. 그가 지리산 정치학교를 도법 실상사 회주와 이남곡 선생과 함께 이끄는 이유다. 지금은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도법·남곡·여류 트리오는 정신적 지주에 머무른다.
그가 펴낸 <애련일지>, 양장본인 그 책은 페이지 수는 적지만 값은 1만8천원이다. 역시 생태와 환경 보전에 애를 써온 수문출판사 대표 이수용 선생의 성화로 상재에 이르렀다. 여류는 책이 안 팔려 이수용 선생의 출판사가 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당초에는 e북으로 펴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돌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필자를 아는 분들은 십시일반 부조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사주시길 청한다.
여류는 시인이자 사진작가다. 내가 ‘스마트폰 사진작가’ 명함을 파주기로 했다. 2007년 시집 <당신이 있어>로 등단, 2018년 시집 <신령한 짐승을 위하여>로 제8회 녹색문학상을 받았다.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지은 책으로 시집 <당신이 있어>, <흔들리는 것들에 눈 맞추며>, <고요한 중심 환한 미소>, <지상에서 돋는 별>, <신령한 짐승을 위하여>, 산문집으로 <밥의 위기, 생명의 위기>, <살아남기, 근원으로 돌아가기>,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시산문집으로 <밥과 똥의 노래> 등이 있다.
필자가 그의 책을 읽으며 <아시아엔>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목 몇 개 소개한다.
“전생이 있고 윤회가 있다면 그것이 어찌 사람에게만 적용된다고 할 것인가. 오늘 아침, 1년 만에 만난 연꽃들이 낯설지 않은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싶기도 하다. 비에 젖어 촉촉해진 땅을 맨발로 걸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연꽃 앞에 다가간다. 지난해에 첫 연꽃과 만났던 날보다 이틀 뒤늦은 만남이다. 이미 연지 이곳저곳에서 연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이 연지의 연꽃이 다 질 때까지 연꽃과의 만남을 이어갈 것이다.” – 17쪽
“나는 미당의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이라는 이 시구절의 마지막을 ‘연꽃을 만나고 오는 바람같이’로 살짝 비틀어 이별이 아니라 만남의 시로 노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오는, 나와 만나는 인연들이 연꽃을 만나고 오는 그런 바람 같았으면, 아니 내가 다른 이들에게 연꽃의 맑고 깊은 향기를 싣고 다가가는 그런 바람같은 존재일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 오늘 아침 연향 가득한 연지에서 연꽃과 만나며 떠올랐다.” – 31쪽
“꽃이 피어 이로 인하여 열매라는 결과를 맺는 것이라면 연꽃은 그 인因과 과果가 동시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흔히 삶과 죽음을 두고 이야기할 때 ‘태어났기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이 곧 죽음’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인이 곧 그대로 결과인 것이다. 동시성이다. 불교의 연기와 인과의 원리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싶다.” – 70쪽
“미련 앞에 한 걸음 더 다가가 자태를 담다가 문득 이 지상에 한 송이 연꽃만 남아 있다면, 아니 이 연지에 지금 마주한 이 연꽃만 남아 있다면 하는 생각이 스며든다. 남은 한 송이 앞에 나는 어떻게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떨리는 가슴으로 더 깊게, 더 오롯하게 만나는 것이 그 전부일 터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더 정성껏 위치와 렌즈의 각도를 달리하며 사진으로 담을 것이다. 절실함으로 담기, 생각해보면 지금 마주한 이 연꽃이 이 연지의 오직 한 송이인 그 연꽃이고 이 지상에 남아 있는 그 마지막 연꽃이기도 하다.” -105쪽
“문득 올해 이 연지에서 피어났던 그 많은 연꽃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민다. 뿌리에서 꽃대가 돋아났다가 꽃으로 피고 다시 그 꽃이 연밥으로 맺혀다가 마지막에 연밥이 시들어 말라 죽는 것을 연꽃의 한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한생을 끝낸 그 다음은 무엇일까. 지상에 드러난 부분은 사라져도 뿌리가 살아 있어 해마다 이 뿌리에서 꽃대가 새롭게 돋아나니 연꽃에겐 죽음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롭게 꽃대를 밀어 올리는 그 꽃은 올해의 그 연꽃은 아니다.” -149쪽
차곡차곡 쌓아올린 연꽃과의 사랑 이야기 –
지나가는 것이어도 아름다운 흔적은 남는 것이군요.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