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 곳] 인제 내린천 ‘맹현산방’···산중 ‘작은도서관’

맹현산방 현판. (사진은 여류 이병철 작가의 작품을 편집했다)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맹현산 중턱…23년 전 하재용 부부가 피땀으로 일궈

맹현산방 작은도서관. 그곳 도로명 주소는 인제군 상남면 내린천로 1385-172. 맹현산방 내 미산리 맹현산 중턱에 자리한 산골 도서관이다. 내가 이곳을 찾은 건, 여류 이병철 형 덕분이다. 형과 형수, 두 사람 이름은 묘하다. 남편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부인은 근대화의 기수이자 유신 독재자 박정희다.

두 사람이 인제와 홍천 접경인 내린산방에서 한달살이를 하면서 우리 부부를 초대했다. 인제와 홍천 인근의 명소와 절경을 찾아다니던 끝에 맹현산방까지 들르게 된 것이다.

미산막국수

맹현산방 인근에는 미산 막국수라는 하는 맛집이 있다. 꼭 들러보시라고 권할 정도로 막국수가 맛나다. 또 강원도의 유명한 약수터인 ‘개인약수터’도 지척에 있다. 조선 시대 때 임금에게 진상한 약수로 철분이 많아 시뻘겋다.

맹현산방은 큰 길에서 1.8km 더 올라가야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인가가 없었던 것 같다. 길가에 작은 목판에 맹현산방을 알리는 글씨를 새겨놓았다.

목판에는 1.6km라고 적혀있는데, 1.8km라고 정직하게 써놓으면 지레 포기를 해버릴까봐…

승용차로는 힘들고, 4륜구동 정도는 돼야지 험한 오프로드를 달려 그곳, 맹현산방에 도착할 수 있다. 4개월여 전, 주인장이 장을 보고 약속 시간에 접선 장소인 길에서 100m 위로 우리 일행에게 왔다.

20분 남짓, 덜컹거리며 산길을 달려 맹현산방에 마침내 도착했다. 들어서니 주인장 맹우 하재용 부부가 거주하는 집과 산중 도서관이 ㄱ(기역)자 형태로 우리를 맞는다. 왼쪽 경사면에는 아담한 폭포와 연못이 작은도서관의 정취를 더해준다.

연못과 도서관 사이에는 약수를 떠먹을 수 있는 샘터도 마련해놓았다. 도서관 입구에는 현판이 ‘작은도서관’은 한글로, 맹현산방은 한자로 멋을 부려 쓰여 있다. 입구 손잡이 옆엔가, ‘누구든 들어오시오’라는 손글씨가 앙증맞게 붙어 있다.

산중에 도서관을 만들려고 무모한 발상을 하다니, 처음에는 그가 누군인지 정체가 궁금했다. 우리가 들어서자 안주인, 지금은 형수님으로 호칭을 면전이 아닌 곳에서는 하는, 이 우릴 맞았다.

포스가 강렬한 서글서글한 얼굴과 아직도 몸맵시가 살아있는 분이다. 어떻게 이곳에서 들어오게 됐는지, 도서관을 왜 만들게 됐는지 곡절을 한참 설명했다. 간추리면, 23년 전 맹우 병철 형이 일하는 게 지겨워져 몇년 간 정주할 곳을 발품을 팔아 찾아낸 곳이란다. 형수도 시골로 들어가면 자신만 생고생할 게 지겨워 시큰둥했는 데 이곳만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형수가 농사를 짓고, 벌을 치고 하는 일은 도맡아 했다고 하니…

손마디가 거칠어지고, 얼굴도 다소 검게 건강미를 느끼게 하는 걸 보니 산골살이가 만만치는 않을 듯하다.  그래도 풍광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맹현산방 한쪽에 서보니, 건너편 저 멀리 백두대간의 방태산을 비롯한 높은 산들이 첩첩이 둘러쳐져 있다. 들어오면서 본 도서관 옆 계수동 계곡에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가 끊일 새 없이 들려와 심신을 달래 준다.

마치 동화 속 그림과 같은 자리에 작은도서관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좋은 풍광에 누구나 열람증 없이 도서관에 들어와 마음에 꽂히는 책을 볼 수 있다. 목재로 지어진 도서관 내부는 향긋한 편백나무 냄새와 함께 5000여권 인문학서적이 비치돼 있다.

언뜻 보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작 <월든>을 비롯한 환경 생태를 중시하는 책 몇권이 한 복판에 보인다. 대자연을 예찬하고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월든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는 명저가 아닐 수 없다.

1845년 봄,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월든호수 옆 숲속으로 들어간 소로는 세상을 꿰뚫어본 선각자이다. 소로가 2년 2개월 동안 노동과 사색을 통해 피와 땀으로 완성한 <월든>은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단순 소박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자신이 직접 키운 곡식만 먹으며, 그 양도 딱 먹을 만큼으로 한정하고, 굳이 곡식을 남겨서 사치스럽고 값비싼 물건들과 맞바꿀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몇 로드 땅만 경작하며 된다…’

그 월든은 맹우산방을 만든 주인장 맹우 형이 심취하는 사유와 지내온 삶의 편린을 짐작하게 한다. 이 산골에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산중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발상만으로도 참 대단한 부부다.

부부는 도서관을 만든 이유를 우스개 그 한마디로 압축한다. “넓은 잔디밭 관리에 등골이 빠지고, 허리가 휠 지경이라서였다”고 농담을 건넸다. 마당 한켠에 도서관을 세우니 잡초 뽑는 일이 확 줄었다고 농반진반 천연득스럽게 늘어놓았다.

도서관장 부부가 이곳에 있을 때는 방문객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며 담소할 기회도 잡을 수 있다. 맹우 하재용이 이따금 툭툭 던지는 말에는 그가 읽고 체험한 삶의 지혜와 그 속살들이 간혹 엿보인다.

맹현산방을 세운 하재용씨

‘알아야 면장을 하지’ ‘극기복례’는 평소 그가 잘 써먹는 속담과 경구들이다.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체득해야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알아야 면장’의 요체일 거다.

극기복례라 함은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이나 집착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뜻하는 말이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서 공자가 제자인 안연에게 인(仁)을 실현하는 방법을 설명한 말로 유명하다. 요즘 말로 바꾸면, 충동적이고 감정적 자아를 의지로 극복, 예법을 아는 선비로 돌아감을 일컫는다.

‘극(克)’이란 이긴다는 거고, ‘기(己)’란 육체를 지닌 인간의 사리사욕을 말하는 것이리라. ‘복(復)’이란 돌이킨다는 것이고, ‘예(禮)’란 하늘의 이성이나 도덕법칙일 것이다. 

결국 어떻게 하면 공자가 강조한 인(사랑, 자비)을 실천할 수 있느냐는 궁극의 해법을 설한 것이다. 누구나 와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도서관이야말로 인류의 삶과 지혜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자연의 뭉클함을 느끼게 하는 맹현산방의 작은 도서관은 바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늘 환영한다. 짬을 내 하루쯤 가족이나 친지들과 이곳을 방문해보시라.

도회살이에 치이고 고단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고 여유를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맹우 형은 도서관을 깔끔하게 짓다보니, 망외로 비용이 들어 독지가에게 ‘다섯 장’ 기부를 받았단다. 그 독지가는 직장 생활을 할 때, 1년 선후배 간으로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이물 없는 분이라고 한다. 맹우는 도서관 짓는 데 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잠실쪽 건설현장에서 수도승이 탁발하듯 일한다.

산중 도서관이 오래 오래 인제의 명소로 자리잡고, 혼탁한 세상의 기운을 맑고 푸르게 하기를 빈다.

인제군 인터넷 홈페이지 도서관 소개란에도 맹현산방의 작은도서관은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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