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왜 가스라이팅 하는가?

*사도행전 22-25장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행 24:27)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행 25:6)

인생의 대부분의 악순환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는 시도입니다.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이 왜 무고한 사람을 계속 가두어 두었을까요? 정치하는 사람에게 사람의 마음과 표심, 여론의 지지는 절대적인 힘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단 정치인 뿐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인은 아니지만 굉장히 정치적입니다.

사람의 관심을 끌고자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연민을 불러일으키고자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기도 합니다. 기도제목을 나누면서도 은근히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자 합니다. 직장 상사의 마음을 얻고자 동료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그 사람 주변인에 대한 안좋은 얘기를 그 사람에게 합니다.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심지어 설교도 사람들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설교가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이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사람 중독증입니다. 사람에 대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누구나 가스라이팅하고 누구나 가스라이팅 당하며 삽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사람이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에게 중독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마음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 중독으로부터 풀려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베스도 총독의 마음을 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는 심문 받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결정합니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행 25:11)

모든 누명을 벗고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에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기에 그는 로마에 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나는 과연 누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을까요? 물론 억지로 사람을 멀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 줄 것처럼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몰수 가능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내 옆에 붙들어 보려고 상당한 무리수를 두며 사는게 우리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거기에 두 손과 두 발이, 그리고 내 마음이 묶여버립니다.

담대함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에게 단단히 묶인 마음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의 환심을 얻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마음, 그것이 담대함입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갈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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