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부르심을 따라 산다는 것
*로마서 1-3장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혹시 기억이 나십니까? 나는 언제부터 나를 나로 인식했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내가 나라는 것을 언제부터 아셨나요? 우리는 나를 부르는 그 이름이 내 이름이라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갓 태어난 아기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내 이름을 알 뿐, 정작 아기는 자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은커녕 내가 엄마인지, 엄마가 나인지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기는 빠르면 15개월차가 되어서야 자기 인식이 조금씩 생긴다고 합니다.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인생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나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그건 바로 나를 ‘너’라고 불러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을 끊임 없이 불러주는 엄마와 아빠의 부름이 있었기에 비로소 그것이 내 이름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이름과 존재를 깨우친 사람은 없습니다. 타자他者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내가 나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 존재의 첫 시작입니다.
그저 핏덩이, 생물체에 불과했던 우리는 누군가의 ‘부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비로소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생은 ‘나를 부르는 이가 누구인가?’, ‘그가 나를 어떻게 부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인생을 삽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이름은 무엇이고 가장 소중한 부름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셨나요?
사도바울은 로마서의 첫줄에 자기 인생의 가장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대해 적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그를 불러주는 곳이 많아서 여기 저기 불려 다녔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차원이 다른 부름을 받고는 바울은 오직 그 부름의 상을 좇아 살게 됩니다.
우리도 동일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과 딸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이 부르심이 있기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과 직함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높여 부른다고 우쭐해지지 않고, 낮춰 부르는 호칭에도 그닥 불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가장 소중하기에 사람들의 부름과 명명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름 받은 사람이 누리는 가장 큰 특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