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66] “버려야 채운다···낡은 사고방식·적용 못할 지식·경험도”

제품에는 수명주기(product life cycle)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인 모습은 정규분포와 유사한 모양으로 보여 진다. 이와 같은 수명주기로 보면 제품별로 혹은 제조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장이 잦아지고 상대적으로 수리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게다가 디지털 기기라면 최신의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지도 않고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보유하는 것보다 폐기하거나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용하다. 그러나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다.

먼저 제품에 미련이 남기 때문이다. 이는 보유하고 있는 기간 대비 사용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을 때 나타난다. 그동안 덜 사용했으니 앞으로 많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옷장 속 의복 중에서 입지 않는 옷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목적이나 목표가 있을 때에만 해당된다. 목적이나 목표가 있다면 필요한 시점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되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상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중이라는 말은 허울좋은 단어에 불과하다. 혹 집에 책이나 모아둔 자료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장식은 아닌지 생각해보면 된다.

개인적인 추억이 담겨 있는 경우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앞서 언급한 내용과는 조금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중간중간 정리하지 않은 상태라면 방치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방치된 것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관리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켜켜이 먼지만 쌓일 뿐이다.

이처럼 더 이상 사용하지는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비단 물리적 공간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심리적 공간도 포함된다.

심리적 공간에서 버려지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면 대개의 경우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 등일 가능성이 짙다. 개인으로 보면 일종의 지적 혹은 경험의 창고라고 할 수 있는데 보이지는 않지만 심리적 공간 역시 물리적 공간과 마찬가지로 저장 용량이 있다. 그리고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용량을 초과하는 내용은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아울러 그 공간에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 경우라면 원활한 순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채워져 있을 뿐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더군다나 이 상태에서 새롭고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있는 것을 빼내어 버리지 않는 이상 넣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채우고 보유하는 것 이상으로 빼내고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교육학에서는 폐기학습(Unlearning)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새로운 지식에 대해 습득하기 전에 과거와 단절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이나 조직 모두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학습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사고 방식에서 탈피하고 낡은 것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사고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제품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제품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사고 방식이나 사용할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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