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강타 초대형 태풍들··사라·매미·힌남노
1959년 9월 17일 한반도 관통 때 5등급(최대 3등급) 태풍 사라는 한반도에 무지막지한 인명피해를 입힌 초특급이었다.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3459명, 총 1900억원(1992년 기준) 피해가 발생했다.
정확히 1959년 9월 15일 서태평양 북마리아나제도 남부의 사이판섬 해역에서 발생했다.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17일 한반도 남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다음 날 동해로 빠져나갔다.
중심부근 1분평균 최대풍속은 초속 85m, 평균은 45m, 최저 기압은 952hPa(헥토파스칼)이었다. 1904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규모가 큰 태풍이었다.
2003년 발생한 태풍 매미에 비해 최저기압(950hPa)만 높았다. 63년 전 9월 17일 새벽, 상륙한 사라는 남해안을 거쳐 통영·대구·영천·영덕·청송·안동·경산·청도·달성까지 세찬 기세로 휩쓸었다. 특히 경상남북도 지역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히고 이튿날 동해로 빠져나간 뒤 소멸했다.
평균 초속 45m의 강풍에 폭우까지 겹쳐 해안 지역에는 강력한 해일이 일어났다. 당시 강이 역류해 남부지방의 가옥과 농경지가 잠겼다. 곳곳의 도로가 유실되고 교량이 파손되었음은 물론,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부산 영도에는 쓰나미가 덮쳐 방파제가 흽쓸려 무너졌다. 그 바람에 바닷물이 남항동까지 밀려와 전차 종점 부근에 농장의 돼지들이 둥둥 떠다녔다 한다. 통조림 공장에서 유출된 깡통들도 떠다니고, 강풍에 양철지붕이 날아다녀 행인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이재민들은 저지대인 전차 종점 위쪽의 영선국민학교로 대피했다.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중 강도로 치면 사라가 역대 최강이다.
일본도 피해가 막심했다. 당시 일본에서도 최저 기압으로는 역대 2위를 기록했다. 99명이 사망하고 509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냈다. 특히 오키나와 미야코섬의 피해가 심해 일본에서는 미야코섬 태풍(宮古島台風)이라고 불렀다.
사라는 1950년대 말 미국의 원조가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던 한국경제에 치명타였다. 직접 태풍을 맞았던 대구와 마산 등지가 4.19혁명의 진원이었던 이유들 중 하나였다.
4.19혁명 직후 장면 총리의 시정 수습안에도 태풍으로 인한 경제난에 대한 대안이 언급됐다. 사라는 현대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편 최악의 피해를 낸 태풍은 2002년, 5조 원대 피해를 안긴 루사(강수량 1위)로 친다.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던 경제나 열악했던 복구·지원도 감안해야 한다. 재산피해는 적었을지언정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간 사라는 최악으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다.
사실 루사보다 재산 피해가 적은 이유는 날아갈 재산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태풍 사라 때, 북한에서까지 원조 제의를 했다. 물론 정부는 ‘논평할 가치도 없다’며 거절했다. 당시 거제 해금강의 촛대 바위 2개 중 하나가 강풍으로 파손됐다.
낙동강 삼각주의 모래톱들 중에도 침몰되지 않은 모래섬이 없었다. 기가 막히게도 미야코 섬 태풍이라 불릴 정도로 큰 피해를 주었던 사라는 일본 입장에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사라가 사라진지 이틀 뒤 발생한 15호 태풍 ‘베라’는 일본에서 기상 관측사상 최악의 태풍으로 단연 손꼽힌다. 파괴력이나 피해 정도가 사라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강력했다.
최저기압 895hPa(일본 상륙 당시 최저기압 929.2 hPa), 최대 순간풍속 71.5m에 4580명이 사망했다. 게다가 내습 경로가 하필이면 나고야-노토반도-도호쿠(후쿠시마-센다이)였다. 이 지역을 순간 최대풍속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며 정확하게 직격했다.
이 때문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발간한 ‘The Great Disasters’에도 올라 있다. 이후 일본은 태풍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 1960년대 무렵부터는 태풍에도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1959년은 5등급 슈퍼태풍이 사라와 베라를 포함해 무려 6개나 발생했다.
한편 힌남노가 ‘역대급’ 강한 태풍으로 북상하는 이유는 온난화와 이상기후 때문이다. 2일 기상청에 따르면 남중국해 수온은 30도 이상으로, 북서태평양을 통틀어 가장 높다. 특히 태풍이 지나는 길목의 해수온도는 평년보다 1~2도 높아 최고 수온을 이루고 있다.
태풍은 열에너지를 흡수하며 위력을 키운다. 태풍 길목의 수온이 높으면 태풍 위력은 강해진다. 힌남노가 ‘초강력’ 강도를 유지하며 북상하는 이유다.
태풍 길목의 수온이 높은 이유는 3년째 계속되고 있는 ‘라니냐’ 영향이다. 라니냐는 열대 동태평양의 수온이 낮아지는 현상이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강해지면서 열대의 더운 바닷물이 한반도로 흘러오게 된다. 우리나라 인근 해수온도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3년 연속 라니냐 발생은 21세기 관측 이래 처음”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올해는 전 지구적으로 평균기온까지 높다. 온난화에 라니냐까지 겹치면서 동북아 지역의 수온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상승한 거다.
제11호 ‘힌남노’는 예상과 달리 6일 부산·경남 해안에 상륙한다. 경로가 서쪽으로 치우치면서 서울 등 수도권에 강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기상청은 2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힌남노가 경남 해안에 상륙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6일 새벽 부산 인근 해안에 상륙해 동해안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전날까지 힌남노는 부산 앞바다 50㎞를 지날 것으로 예측됐지만, ‘상륙’으로 바뀌었다. 동쪽에 위치한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서쪽으로 밀어낼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태풍의 중심 풍속, 기압계 상황에 따라 힌남노 경로가 서쪽으로 더 치우칠 가능성도 있다. 제주 서쪽을 지나 전남 남해안 상륙도 가능하다. 힌남노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중 가장 강력하다. 상륙 시점인 6일 힌남노 중심기압은 940~950hPa에 이를 전망이다.
역대 최악의 ‘사라’와 ‘매미’의 상륙 때보다 더 낮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는 힘이 세져 더 강력해진다. 힌남노 풍속은 초속 50m(시속 18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이 날리거나 건물을 부술 수 있는 속도다.
전국에 시간당 50~100㎜ 집중 호우도 쏟아질 걸로 예상된다. 제주 등 일부는 태풍의 간접 영향권으로 2일부터 비가 내렸다. 기상전문가들은 “올해 9, 10월 동아시아를 찾는 태풍은 과거보다 강도가 강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