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코드] 단 한 놈의 적도 도성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충무공 이순신탄생 467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4월26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에서 열린 청계천 모형거북선 경주대회에 중구청이 특수제작한 거북선이 청계천을 떠다니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항복의 전라좌수영대첩비 비문 중에서

지난 임진년에 미친 반역의 도적들이 이웃나라 쳐들어와서 모든 고을 깨어지고도 적떼 막지 못해 무인지경되었는데, 그때 오직 이공께서 용맹 더욱 떨치시어 바닷가 억누르고 명나라도 달려들어 많은 군사 뽑아내어 진린에게 명령하니, 번개처럼 공격하고 바다 귀신 지키시어 적들이 움츠러들어 포구에 진을 치매 언덕마다 싸움 벌려 화살 모아 쏘았건만, 죽어가며 발악하여 님의 몸에 해 끼칠 때 신은 어이 못 돕던가. 노량 바다 검붉은 물 넘실대는 이곳에 이 비석 세우노니, 뒷세상 길이길이 공의 이름 높이 들려 나라 운명 같이하리.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에서 발췌

지난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이 되던 해, 한려수도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100년 전의 슬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앞서 목숨으로 지킨 나라를 후손들이 잠시 잃었다는 죄책감으로 목이 멨습니다.

그러고는 서울에 올라와 곧바로 성곽을 따라 걸었습니다. 걷다가 숙정문을 지나고 청운대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니 광화문, 세종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한복판에 “단 한 놈의 적도 도성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라며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자랑스러운 조상입니다.

서울의 성곽이 잘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한 번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왜적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선조임금은 황급히 북쪽으로 피난을 서둘렀습니다. 왜적이 서울에 도착했을때 성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왜적은 조선의 계략이 아닐까 주저하다 성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제야 임금이 도망간 것을 알고 황당해 했습니다.적을 방어할 의지가 없는 나라에 굳센 성곽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잘 복원된 성곽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다시는 우리 강토를, 우리 삶의 터전을, 우리 생명줄을 잃지 말자”는 약속입니다.

계속해서 창의문을 지나서 백석동천 백사실계곡까지 갔습니다. 이순신장군의 삶과 지략을 배우면서 알게 된 백사 이항복 할아버지의 별장터를 찾았습니다. 백사 이항복 대감은 이순신 장군을 객관적으로 이해했던 인물로서 이순신 장군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인물입니다. 구전으로 내려와 확실한 위치가 아니었지만 백사 이항복 대감의 별장이 있었던 백사실계곡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로, 소리 없는 경제 전쟁시대입니다. 우리의 장터에 무혈입성하는 자는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개발한 아이템과 아이디어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도용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곽을 지키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때입니다.

혁신의 산물 거북선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중에서

신은 일찍이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거북선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설치하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비록 수백 척의 적선 속이라 하더라도 돌진해 들어가서 대포를 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번 출동에는 돌격장이 타고 왔습니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에서 발췌

이순신 장군은 정읍 현감에서 진도 군수로 임명 되었으나 미처 부임도하기 전에 가리포 첨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전라좌수사가 되었는데, 이처럼 파격적으로 등용된 것을 보면 당시 나라 상황이 풍전등화 같았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항상 준비하며 고민하는 리더였습니다. 임진왜란 전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발명합니다. 고민하지 않으면 준비도 할 수 없고 준비하지 않으면 혁신도 할 수 없습니다.

조선 수군의 약점들이 장점으로 부각된 거북선!

“조선 수군은 검을 사용하는 왜선의 등선육박전(登船肉薄戰)에 취약하니 함포전을 해야 하고, 조선 수군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이기려면 거북선을 돌격선으로 삼아 적선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 각종 대포들을 쏘아적선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이순신 장군의 평소 혁신적 고민이 거북선을 탄생시켰습니다. 거북선의 탄생으로 해전에 취약한 조선 수군은 적을 전멸시켰으며, 이순신 장군이 이끈 한산대첩은 세계 3대 해전으로 기록될수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혁신의 리더십은 준비하는 자의 몫입니다. 리더는 항상준비하고 공부하고 혁신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지 않는 한 본래 가지고 있는 역량조차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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