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코드] 작은 이익을 경계하라
임진왜란 중에 맞은 새해 아침
1592년 1월1일[壬戌]. 맑다. 새벽에 아우 여필과 조카 봉, 아들 회가 찾아와서 함께 이야기하였다. 다만 어머님을 떠나서 두 번이나 남도에서 새해를 맞게 되니 간절한 회포를 이길 길이 없다.
1594년 1월1일[庚辰].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어머님을 모시고 같이 한 살을 더하게 되니 이것은 난리 중에도 다행한 일이다. 늦게 군사들을 훈련하고 전쟁에 대비할 일로 본영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그치지 않았다.
1595년 1월1일[甲戌]. 맑다. 촛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나라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또 병드신 여든 노친을 생각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에 여러 장수들과 여러 아전들과 군사들이 와서 새해 인사를 하였다. 원전, 윤언심, 고경운 등이 와서 만났다. 모든 아전들과 군사들에게 술을 먹였다.
1596년 1월1일[戌辰]. 맑다.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가 어머님을 뵈었다. 늦게 남양 아저씨와 신(愼) 사과(司果 : 군사 직위의 하나)가 와서 이야기하였다. 저녁에 어머님께 하직 인사를 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몹시 산란하여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에서 발췌
우리의 큰 명절인 설날이 되어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타향에서 설을 쇠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으나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새해 아침을 보면 전쟁 중에도 나라 걱정, 부모님 걱정, 자식 걱정을 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장군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 또한 우리들과 같은 자식이면서 어버이였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사사로움 보다 나라를 위한 더 큰 마음으로 전장을 지키며 모든 상심을 이겨냈습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설날에는 아전들과 군사들에게 술을 먹였다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와 같은 따뜻한 마음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같은 냉철한 선택과 치밀한 계획이야말로 팀워크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입니다.?
경계해야 할 소탐대실(小貪大失)
1594년 2월13일 임술. 맑고 따뜻하다. 아침에 영의정에게 회답 편지를 썼다. 식사 후에 선전관(송경령)을 불러 다시 이야기했다.
그때 경상도 군관 제홍록이 삼봉으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적선 8척이 들어와 춘원포에 정박하였으니 들이칠 만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장 나대용을 원수사에게 보내어 상의케 하면서 전하게 한 말은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아직 가만히 두었다가 다시 적선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회를 엿보아서 무찌르기를 서로 작정하자”는 것이었다. 미조항첨사, 순천부사, 조방장이 왔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박영남, 송덕일도 돌아갔다.
– 노승석,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에서 발췌?
리더의 덕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사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항상 솔선수범하는 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자기 사업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고, 솔선수범하는 것은 주위의 모든 동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의욕을 북돋우는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쳐서 탐욕이 되는 수도 있으니 이것은 리더의 교만함에서 옵니다. 처음에 순수하게 시작한 사업의 열정은 어디 가고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수록 교만해져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스러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리더의 모습입니다. 전쟁 중에서도 이러한 일들을 우려하고 있음을 《난중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경제 전쟁 중에서야 더 말할 나위 없겠습니다.
소탐대실! 사업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소탐대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둘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기업가들에게도 교만과 탐욕의 길을 걷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