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디자이너 박은주의 꿈 “K-한복으로 세계최고 패션 비상”
한복디자이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는 10년 뒤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 옷은 그저 일상복과 기껏해야 예복 정도로만 생각해온 기자가 궁금해온 물음들이었다. 마침 지난 6월 중순 베트남 해안관광도시 나트랑에서 열린 한-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 패션쇼에서 만난 박은주 한복디자이너(46 성신여대 겸임교수)를 인터뷰했다.
20년 이상 한복디자인에 몰두해온 그에게 ‘옷’과 ‘한복’이 어떤 의미인지 먼저 물었다.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감성이며 취향을 표출하는 수단”이라고 했다.한복에 대해선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복식이자 우리의 역사가 바로 한복입니다. 한복디자이너인 저에게는 예술작품이기도 하구요.”
한복 세계화에 대해 박은주 디자이너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는 “먼저 한복 세계화는 충분히 가능하기도 하고 꼭 그렇게 해야할 ‘당위성’이 있다”며 “그런데 몇가지 충족돼야 할 조건이 있다”고 했다.
박 디자이너는 “그것은 바로 한복의 주재료인 실크는 심미성이 뛰어난 소재는 맞지만 관리의 실용성이 떨어져 세계인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학계의 신소재 개발과 한복의 특수성에 세계적 보편성을 결합한 디자인 개발이 절실하다”고 했다.
전세계 패션계에서 한복의 위상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샤넬, 구찌 등 세계명품 컬렉션에서 한복을 모티브로 한 의상이 선보였다. BTS, 블랙핑크 등 한류스타들이 퓨전한복을 착장(着裝)해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한복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내국인보다 외국인 사이에서 관심도와 호감도가 높다는 얘기다. ‘한복이 아름답다’, ‘아주 좋다’, ‘디자인이 예쁘다’ 등 선호도 측정결과에서도 한복의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는 논문 및 연구결과들이 있다.”
이 대목에서 박은주 디자이너는 “작품의 연구개발이 저의 과제인 셈”이라고 귀뜸했다.
전통과 현대가 혼재돼 있는 지금, 어디까지 전통한복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전통한복은 원류부터 개화기까지 시기의 한복으로 본다. 흔히 조선시대의 한복을 전통한복이라 생각하지만, 삼국시대나 그 이전의 우리 민족이 입은 의상이 모두 전통한복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는 “그러나 전통미를 계승하는데 있어 조선시대뿐 아니라 고려시대를 넘어 삼국시대까지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MZ세대들이 한복을 입게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전통과 현대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디자인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MZ세대들이 추구하는 전통 힙의 한복뿐 아니라 한복 관련 문화상품 개발도 시급하다. 그들은 한복 소품에 크게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퓨전한복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는 “충분히 가능하다. 양장패턴의 변화, 레이스나 웨딩소재 및 색상의 변화, 속옷의 겉옷화 같은 용도의 변화, 믹스매치 등의 착용방식의 변화, 서양 컨셉에 한복도입 및 젠더리스 등의 트렌드로 현대 한복이 표현되고 있다. 다만 코르셋과 같은 디자인의 과도한 변형은 정통성 훼손이라는 견해도 있는 만큼 명분있는 디자인 개발을 해야 한다.”
박 디자이너에게 향후 10년 안에 한복 디자이너 일과 관련해 가장 하고 싶은 것 세가지를 우선순위 별로 물었다.
“첫째, 이번 한-베수교 30주년 기념 한복쇼와 같은 국내외 문화행사에 참가해 우리옷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고 싶다. 한류의 일환으로 한복이 각광받고 있는 반면, 중국의 ‘한복공정’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애플TV의 ‘파친코’로 한복에 주목하면서, ‘한복의 진화는 대한민국의 2000년 역사이며 실용적이고 아름답다’고 평했다. 이는 중국의 ‘한복공정’이 심해지는 가운데 등장한 의미있는 보도라 생각한다. 한복디자이너로서 전통의 확산과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한다.”
두 번째 꿈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진행형이지만 내 작품이 한복 명품브랜드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성, 희소성, 상징성, 심미성, 그리고 역사성 등의 조건을 갖추고 고품질, 고품격을 유지할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하려 한다.”
그의 세 번째 꿈은 한복전문학원 설립이라고 한다. “현재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한복구성의 기초, 고급, 심화과정의 다양한 커리큘럼과 전통문화에 연관된 다방면의 전문가 선생님들을 모시고 일반인과 학생은 물론 소외계층까지 누구나 수강할 수 있는 한복전문학원 세우는 게 꿈이다. 그는 ”아무리 전통문화가 소중해도 차세대들에게 전수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되물었다.
평소에 준비가 돼있지 않으면 답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단을 한 채 다음 질문을 던졌다. “2030년 부산엑스포가 유치됐다는 가정 아래 개막식에 등장할 한복 및 한복쇼를 연출하게 됐다면 어떻게 준비하여 실행할 것인가?”
박 디자이너는 이렇게 답했다.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의 두 키워드로 전세계 패션 핵심어인 ‘sustainability’를 한복에서 보여주겠다. 개막식 한복은 친(親)환경 소재, 필(必)환경의 재활용 의상과 새활용의 펫트병 재활용 원사를 사용한 원단을 개발하여 전통한복, 생활한복, 퓨전한복, 신한복, 현대한복까지 다양한 형태로 기획·디자인해 무대에 올리겠다. 한복쇼는 우리 민족의 2000년 역사를 보여주는 한복의 변천사 컨셉으로 궁중복과 일반복 두 개 파트로 진행해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겠다. 다채롭고 화려한 2030 부산엑스포 개막무대, 상상만 해도 설렌다.”
그는 지난 6월 나트랑 한-베수교 30년 기념 패션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어필 가능한 한복드레스를 선보여 K-fashion의 위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의 기후를 고려한 여름 한복과 아오자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H-A라인의 오프숄더 한복드레스, 실용성을 접목시킨 철릭원피스의 컨셉으로 기획했다. 나트랑 해변 무대 앞에 몰려온 5000여 베트남 관객들이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번 문화행사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전통의상이 나란히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늘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