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10] 선관위가 안고 있는 딜레마들

근본적인 정치적 질문, 궁금해 하는 이도 그다지 많지 않고 제대로 답을 해주는 이도 별로 없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정치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정치인들일까요? 언론일까요? 민주주의 나라에서 주권은 시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정치의 주체는 당연히 시민입니다.

선거의 주인공도 당연히 유권자입니다. 그러나 선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정당과 후보에게 있고, 선거의 주인공은 당선자라는 인식이 보편적인 게 현실입니다. 정당도 후보도 언론도 시민을 그저 ‘표’로만 바라봅니다. 선관위도 시민은 규제대상으로만 봅니다. 시민도 주권자로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을 대리할 대표를 제대로 뽑으려면 후보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유권자의 알 권리는 올바른 선택을 도와 시민주권주의의 실현에 기여하므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후보가 선택을 받으려면 자신을 잘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거운동입니다. 선거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선거운동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선거운동은 주권 행사의 일환이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한 형태입니다. 따라서 선거운동의 자유가 허용되는 범위는 그 사회가 민주사회인가 아닌가, 선거가 제 구실을 하는가 아닌가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도 “입법자는 선거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입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시민의 적극 참여에 관심이 없습니다. 선관위의 역할은 국가권력의 선거개입을 막고, 정당과 후보자의 탈법을 막는 겁니다. 시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노력도 해야 하고, 선거를 정책경쟁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선관위의 몫입니다. 그런데 선관위의 선거법 해석과 적용이 시민의 정치참여를 막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전투표제가 실시된 이후로는 없어졌지만 한때 ‘부재자 투표소 설치’ 요구운동이 있었습니다. 집을 떠나 다른 지역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학 구내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했던 겁니다. 선거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지만 시험 등이 겹치게 되면 투표를 하러 집에 다녀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구내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려면 부재자투표 예상자가 2천명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2천명이 안 돼도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해 달라고 대학생 유권자들이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그래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 때는 부재자투표 예상자가 2천명이 안 되는 건국대, 충북대, 대구대 등에 학내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되었습니다.

부재자투표 예상자가 2천명 미만이어도 “지리·교통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구·시·군 선관위가 “투표관리관을 지정하여 부재자투표소를 설치·운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도 부재자투표 예상자가 2천명이 안 되는 부산교대 등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때는 선관위가 부재자 투표소 설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일부 지역 선관위에서는 설치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에게 ‘불법’이라고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선관위가 편파적인 선거관리로 “관권선거를 방조하고, 불공정 편파선거를 조장한다”며 당시 양승태 선관위원장이 고발당했겠습니까?

선거의 공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선거운동의 자유가 제약될 수 있습니다. 선거의 공정이 갖는 가치를 앞세워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선거의 공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 선거운동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관위는 선거운동의 자유와 선거의 공정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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